24시간이 짧다는 일러스트 엄순정씨

'일러스트'라는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분야에서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는 엄순정(42세)씨를 만났다. 엄순정씨는 울진이 좋아서 메마른 도시생활을 정리한 후 울진에 정착,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울진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녀의 독특한 작품경향으로 인해 지난 16년의 시간이 '엄순정표 일러스트'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최근 부산 마린갤러리(해운대 소재, 4.19~30)에서 3회 개인전을 열며, KNN부산방송의 'TV갤러리'를 통해 전시작품이 소개돼 주목을 끌기도 했다.

그녀는 체격은 왜소하지만 자신의 작품에 대한 열정과 창작열에 대해 과감없이 풀어 나갔다.

 

△ 본인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지만 성장과 생활은 서울에서 했어요. 동생 남편이 울진사람이라 98년 여름휴가 울진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그해 가을에 내려 왔었죠. 98년이 흔히 말하는 IMF 시기여서, 메마르고 삭막한 도시생활을 미련없이 접었죠.

울진에서 생활하면서 저 같은 경우는 답답함을 모르겠더라고요. 다양한 공연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봤지만 '울진을 벗어나자, 떠나자'라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지역민들이 울진에 대한 애착이 부족하지 않나하는 의구심을 가지기도 해요.

아이의 교육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요. 아이에게 뭔가를 가르쳐야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아이가 호감을 가지는 것, 좋아하는 것을 하게 하면 되니까요.

울진이 제2의 고향이라고 여기며 많이 아끼고 살아가지만, 양분화되는 상황에서는 여전히 내 자신이 객지사람, 타지인으로 비춰지는 것이 속상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 일러스트에 대한 설명과 매력은 무엇인가요

- 96년도에 제 그림을 우연히 보시던 교수님이 '일러스트 공모전에 출품해보라'고 권유를 받았어요. '공모는 아무나 하나요'라는 제 물음에 교수님 왈 '공모는 원래 아무나 하는 거야'라는 말씀 덕택으로 그해 전국공모에서 입선하여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일러스트는 시각디자인의 한 분야인데 최근 몇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부각되고 있지만, 대한민국미술대전이나 경북미술대전과 같은 공모전에서는 여전히 디자인 파트에서 공모를 하고 있어요.

일러스트는 종류가 많습니다. 시사 광고 아트 동화 카툰 애니메이션 등등. 즉 일러스트는 생활 속에 있지만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거예요. 일러스트라는 단어는 낯설지만 생활 속에 있어요. 흔한 예로 머그잔에 있는 그림도 일러스트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일러스트가 광고와 상품에 많이 이용되다보니 상업성도 가집니다. 그러나 저는 아트일러스트쪽이에요, 작가의 주관적 경향과 성향이 드러나는 예술적 성향을 가진 회화적인 느낌이 많죠.

일러스트는 보이는 데로 느껴지는 데로 철학적인 내용보다는 보는 사람이 느낀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이 분야에 '타샤투더'라는 유명한 분이 있어요. 그분이 인터뷰에서 '왜 그림을 그리느냐'는 물음에, '식량과 구근(알뿌리 식물)을 사기 위해 그린다'라는 기대 밖의 답변을 듣고, 저 역시도 거창할 필요없이 먹고살기 위해 그립니다.

 

△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개인전을 3번이나 열었습니다. 열정과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나요

- 첫 개인전이 지난해 8월12일부터 18일까지 서울시 인사동 경인미술관 아틀리에관에서 있었어요. 제 작품들을 들고 나가기가 두렵고 무서웠죠. 150점을 전시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어요.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사이즈로 작품집을 만들었는데 보러 오시는 분들마다 많이 구매해 줬습니다. 저로서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녀가리라고는 상상을 못했었어요. 일주일간을 전시장에 있었는데 관람객들에게 사인도 많이 해줬습니다.

관객들이 '어디가서 배울수 있나요'라며 관심과 성원으로 인해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고 열정 또한 덤으로 얻을 수 있었어요. 진짜 꿈같은 1주일간의 전시였어요.

이후 팸플릿을 들고 갤러리 투어를 하여 부산에서 2회('커피주면 안잡아먹지', 부산 투썸플레이즈)와 3회('희망아 안녕?', 부산 마린갤러리) 개인전을 이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한편으론 개인전을 준비하는 몇 달 동안 굉장한 압박을 받았어요. 등을 붙이고 제대로 자본 기억이 없어요. 낮에는 일하고 밤에 작업을 할 수밖에 없어 책상에서 엎드려 자거나 새우잠을 잤죠.

3회 개인전을 마치면서 '더 칼을 갈아야' 전업작가로의 길을 갈 수 있겠구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나도 만족하고 관객에게도 좋은 그림으로 다가서는, 대중 속에 나의 그림이 걸리고 싶은 욕심이 있죠. 그러기 위해서는 고객의 호감을 살 수 있는 부분을 잡아야 되는 것이 숙제죠. 대중의 눈과 마음 나아가 구매욕구를 자극할 수 있어야 된다고 느꼈어요.

 

△ 상상력과 창의력은 어떻게 키워냅니까

- 제가 그리고도 가끔은 놀라기도 합니다(웃음). 상상력은 스스로는 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주위 사람들 반응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스스로도 엉뚱한 부분이 있어요, 취미가 공상입니다. 연상을 많이 하고 일상 속에서 사소한 것이더라도 여러 각도에서 다양하게 생각합니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메모하기 보다는 스쳐가는 대로 놔둡니다. 또 다시 떠오르게 되더군요.

흔히들 말하는 '슬럼프'에 대한 극복도 계속 작품을 그리면서 '안되면 되게하라'는 신념으로 끊임없이 자신에게 주문합니다. 습관처럼 책상에 앉아 항상 작품을 그리는 것은 아니지만 낙서도 하고 책도 읽으면서 몸을 작품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익숙하게 습관화시키는 것이죠.

 

△ 작품의 소재도 다양한 것 같습니다

- 작품을 그리는 소재도 캔버스, 보드지, 나무판, 접시 등 다양하게 사용합니다. 각 재료마다 재질감이 주는 매력이 있거든요.

남편(임정수, 46세)은 저에게는 엄청난 협력자입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작품에 맞는 액자를 100% 맞춰줍니다. 작품에 대해 어떤 색의 어떤 모양의 액자가 적합할까하고 의견을 나누지만 남편은 100% 저 의견을 수렴해 주죠.

즐거울 때, 슬플 때, 우울할 때 놓여 있는 상황 그대로 작품에 옮겨 관객들에게 전달합니다. 때로는 테마를 정해서 연재를 만들어 가기도 하고요. 그러다보니 주관적인 것이 많아요, 대중들이 받아들이기에 쉽지 않을 때도 있죠. 예를 들어 처녀전의 주제가 '그녀의 love is...?'였는데, 일상에서의 슬픔, 행복, 즐거움 등을 상상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었죠. 마음이 슬플 때 흩날리는 벚꽃은 어떻게 보일까? 나의 이야기에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라고 상상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작품 소재에는 폐가와 낡은 오래된 집이 많습니다. 여기에 생명과 온기를 불어넣어 관객들에게 정감을 전달하는 그런 그림이 좋아요.

현장 스케치를 하는 것 보다는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은데, 강원도 어느 마을에서는 낡은 집을 찍고 있는데 마을 주민들이 시청에서 나온 공무원인줄 알고 재개발 하느냐고 묻기도 하고 그랬어요. 마을 노인분들이 찍을 때마다 따라 다니면서 '왜 찍냐?' '뭘 찍냐?'고 묻기도 해요. 설명을 해드리면 어른들이 공감하면서 좋아합니다.

 

△ 작품의 주인공으로 '외눈박이'가 자주 등장합니다.

- 외눈박이는 '한눈으로 한곳만, 한사람과, 한가지만 바라보는 절대적인 믿음과 사랑'의 의미가 있어요. 외눈박이에 대해 관객들로부터 처음 볼 때는 외계인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그러다가 관객들이 외눈박이가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고 말하더군요. 관객들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냐며, 공감하고 맞장구쳐주는 것이 많은 힘이 됩니다. '나도 이런 것을 생각은 했는데 표현하지 못했는데...' 하면서요.

 

△ 앞으로의 계획과 욕심이 있다면

- 학원을 운영하다 보니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요. 전업작가가 아닌 이상 한계이긴 하지만 시간을 좀 더 할애하여 작품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현재 종합복지회관에서 엄마와 아이가 함께하는 영유아 미술교실을 하고 있는데, 이를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한글교육에 접목시켜서 수업을 하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미술을 통해 엄마와 아이가 소통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많거든요.

작품을 완성하고 처음 그 순간은 만족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쉬운 점이 보여요. 현재 연재가 진행 중인 컬쳐라인의 '울진이야기'를 계속하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지속적으로 활발하게 울진을 이야기해 가을쯤에는 울진에서의 전시회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먹고 살려는 그림을 그리기 보다는 자기 욕구 충족적인 그림을 그려요. 희망사항이자 꿈은 그림만 그리는 순수 전업작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엄순정씨는 3회 개인전 '희망아 안녕?'에서 "더없이 힘든 요즘 사람들에게 그나마 세상은 살아볼만하다고, 가치와 의미가 있다고 꿈을 주고 용기를 주고 권면해 주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내 스스로에게 하고픈 말인지도 모른다. 사실 나 또한 삶이 버겁고 힘들고 때론 모든 것을 버리고 싶을 만큼 그렇게 숨조차 쉬기 힘들만큼 괴로울 때가 많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려는 건지도 모른다. 이번 전시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다"고 밝혔다.

저녁 8시 넘어서 시작돼 한 시간 반가량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엄순정씨의 이야기를 듣노라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지경이다. 울진이 좋다고 무작정 달려온 그녀는 이방인 아닌 이방인으로 울진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녀가 앞으로 울진을 어떻게 이야기할 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대가 된다.

"지역사람들이 오히려 울진을 더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는 그녀의 말에 공감을 한다. 지역에 대한 사랑, 그것은 곧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엄순정씨는 전국일러스트 공모 입상과 디자인대전, 신미술대전, 경북도미술대전, 대한민국미술대전 등 여러 공모전에서 입상했다. 월간울진과 컬쳐라인에 연재하고 있으며, 울진나무미술학원과 나무공방을 운영하며 하루 24시간이 짧게(?)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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