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23일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 521번지 일대에 국보 제242호인 울진봉평리신라비(蔚珍鳳坪里新羅碑) 전시관이 개관식을 가졌다. 4년여 동안의 공사기간과 180여억원의 공사비를 투입해 12,624평의 부지에 지하1층 지상2층, 건축연면적 723평 규모로 건축하였다. 전시실은 제1전시관 제2전시관 제3전시관 그리고 체험실과 야외 비석전시관을 갖추어 국내에서는 고대비석을 한곳에 전시한 유일한 박물관이다.

우리나라의 고대사 연구에 최고 권위자로 알려져 있는 단국대 정영호 석좌교수는 이틀간 열린 학술토론회 기조연설에서 “울진봉평리신라비 전시관은 동양은 물론 전 세계에서 유일한 비석 박물관”이라 극찬하였다.

제1전시관에는 국보 제242호인「울진봉평리신라비」의 실물과 함께 비문을 해석한 해설문, 1988년 처음 발견 당시의 과정을 설명하는 자료들을 전시하였다.

제2전시관에는 국내에서 발견된 삼국시대의 석비들을 전시하였는데, 유교 공부를 함께 한 두 사람이 후일 나라에 중요사건이 일어나면 반드시 앞장을 서자고 맹서한 내용의 ‘임신서기석’을 비롯하여, 503년에 세워진 ‘영일냉수리비’, 성(城)을 쌓다가 죽은 사람의 가족에게도 포상함으로서 국가에 충성을 권장하던 ‘단양적성비’ 등 6기의 신라비와 5세기초 고구려가 충주까지 남하했음을 알리는 ‘중원고구려비’, 그리고 백제의 비석인 ‘무령왕릉 지석’ 등 총 9점의 삼국시대 비석이 전시되어 있다.

2층에 마련된 제3전시관은 금석문의 발전 과정을 설명한 공간으로, 국내의 유명 국보와 보물급 비석들에 대해 시대별로 검색할 수 있도록 전산시스템을 갖췄다. 그리고 서체의 발달 과정과 울산 천전리 각석을 통하여 글자가 없었던 선사시대 사람들의 기원인 상형문자나 그림들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제3전시관을 관람하고 다시 1층으로 연견된 체험실에 내려오면 ‘봉평리신라비’ 모형을 통하여 직접 비석을 만져보고 탁본도 할 수 있도록 하였고, 우리나라 전통 건축물의 공포양식을 짜 맞추어 보는 체험과 울진 특산물인 ‘울진대게, 금강송송이’ 등의 모양을 건탁할 수 있는 시설도 만들었다.

제4전시관 격인 야외 전시관에는 한반도 모양의 지형위에 국내의 국보, 보물급 유명 비석들을 발견된 지역에 그대로 배치하여 현장감을 더 높였다. 비록 모형비이긴 하지만 조각솜씨나 크기, 그리고 글자모양, 비석의 색깔까지도 실물에 가깝도록 제작하였으므로 가까이서 만져도 볼 수도 있어 실물보다 오히려 더 유익하다는 평가다.

야외 전시관에는 총 24기의 비석이 전시되어있는데 주로 신라 후기의 비석들로 승려들의 신도비가 많다. 사람의 목이 없는 ‘이차돈의 순교비’를 비롯하여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국운이 한창 뻗쳐나갈 때의 비석인 ‘태종 무열왕비’의 힘차게 내민 귀두는 보면 볼수록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양반이 아닌 상민들의 이름을 그대로 적음으로서 국내유일의 석비로 유명한 평해의 ‘북천교비’를 비롯하여 압록강 넘어 중국 길림성에 있는 6.39m의 ‘광개토대왕비’ 도 실물과 똑같이 제작하여 전시하였다.

이곳에서는 각 시대별로 비석의 발전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체들의 발전 과정과 최치원과 같은 명필들의 글씨도 감상할 수 있다. 비석의 귀부나 용두의 익살스런 표정, 여의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용트림 하는 이수의 조각 등은 우리나라 석조예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비석의 조각품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비신에 새겨진 서체들을 꼼꼼히 감상하노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천년의 역사 속에 푹 빠져 비석들과 대화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 울진도 문화의 시대가 열리는 듯하다. 외지에서 손님이 오면 구경시킬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이제는 봉평리신라비 전시관이 있어 자신있게 권할 수 있게 되었다.

울진인 정체성의 뿌리이며 삼국사기의 내용을 최초로 입증함으로써 국보의 지위를 확보한「울진봉평리신라비」는 울진으로서는 최고의 자랑거리임에 틀림없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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