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의 겨울 바람은 강도가 단순하다. 

강아니면 약.

드셀 때는 지붕이 다 날아갈 정도로 강하고, 안그러면 바람이 부는지 마는지 그저 싸늘한 기운만 온몸을 감싸는 그 정도다.

거기다가 지붕 아래 풍경을 걸어두었는데 얼마나 바람과 놀아났는지 절단이 났다. 그만 꼭지가 떨어지고 만 것이다.

난 풍경을 좋아한다.

풍경을 보면 절이 생각난다.

나는 성당을 다니지만 절과 스님들을 좋아한다.  고즈넉한 절...

그 처마 아래의 물고기 한 마리...

중생들에게 끊임없이 메시지를 주는듯해서 풍경소리는 들을 때마다 내 가슴판에 문자메시지를 박아준다.

그것이 그 날의 화두다.

어여 봄이 되기 전에 저 풍경을 고쳐야 한다. 그래야 자주 그 소리에 문자를 확인하고 그것으로 하루를 묵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산골에 와서 출세했다고 생각하게 하는 일이 한두 가지일까마는 그 중 하나가 톱질이다.
새 집을 짓기 전, 오두막에 살 때는 톱을 자주 손에 들었었다.

처음 귀농한다고 그 오두막을 보러 왔을 때는 대문, 아니 쪽문이고 뭐고 아무 것도 없었다.
샤시로 된 옆으로 미는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면 안의 마루가 냅다 나온다.

뭐, 15평도 안되는 오두막에 마루도 자그맣고, 방은 군불때는 방 하나, 그리고 나무 보일러로 뎁히는 방 두 개가 있었다. 그 방 중 한켠에 입식 부엌이 아주 조그맣게 있었다.

화장실은 물론 집을 나와 마당을 지나 대추나무를 지나 걸아가야 있는 푸세식 화장실이었고...

그런 곳에 가작, 즉 처마을 내다는 작업을 해서 비가림을 할 수 있게 했다. 그렇게 몇 해 살고 있는데 초보농사꾼 후배가 와서 바깥 마루에 마루를 깔아주었다.

지금 새집의 설계를 도맡아 해준 후배인데 서울에서 설계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여하튼 마루까지는 깔렸는데 문이 없다. 초보농사꾼에게 쥐똥만한 문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다. 잠금장치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니 아랫도리만 있는 문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알았다는 대답을 듣고 해를 넘겼다.

그러다 보니 집 안에 욕실도 문이 없다.

그곳은 말이 욕실이지 재래식 부엌이었단다. 그랬던 것을 이전에 사셨던 할아버지가 개조를 하시고 직접 타일을 붙이셨으니 그 안의 꼴이 어떨지는 눈감고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욕실이라도 오두막 안에 있다는 것에 거수경례를 매일 붙이며 살았었다. 

문제는 문이 없다는 것.

임시방편으로 커펜처럼 이쁜 천으로 막아 사용했었다. 우리 식구만 살 때는 문제되고 자시고도 없는데 손님이 오면 이거 통제가 안된다.

그러다보니 어째 겉옷 안입고 서있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욕실의 문짝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욕실 문이라고 해도 그 문은 문풍지 문 그 사이즈이다.

허리를 있는대로 구부리고 들어가야 하는 문. 이전에는 그것을 달아 사용하셨던 모양인데 우리가 이사갔을 때는 그나마 그것도 없었다.

초보농사꾼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말했지만 내 말을 알아먹었는지 어떤지 한동안 꿀먹은 벙어리마냥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때 톱을 들었다. 남이 톱질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나도 그 톱을 잡기만 하면 슬그렁슬그렁 톱 아래로 밥을 흘리면서 나무가 순식간에 두 토막이 날 것같았다.

초보농사꾼에게 입을 씰룩이며 톱을 들었다.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대목장을 흉내내어 귀 뒤에 연필도 꽂고 일단 나무를 재단한다며 자를 대고 귀 뒤의 연필을 가져다 그은 다음 톱을 갖다 대었는데 쉽지 않았다.

힘들 더 바짝 주고 밀고 당기고를 반복했다.

그런데 서랍을 열고 닫는 것처럼 그렇게 부드럽게 슬그렁슬그렁 톱이 나무 사이를 오갈 때마다 톱밥을 질질 흘리며 연필 그은 곳을 둘로 갈라놓아야 하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더더욱 아랫 배에 힘을 주고 한 발로 나무를 더 단단히 밟고 허리를 절도있게 구부리고 다시 폼나게 시도해보지만 힘을 주면 줄수록 두껍지도 않은 그 놈의 판대기는 두 조각날 줄 몰랐다.

그렇다고 초보농사꾼에게 눈까지 허옇게 흘기고, 입을 씰룩거리며 내가 할 수 있다고 덤벼들었는데 슬그머니 톱을 놓을 수도 없는 처지에 놓였다.

톱에 그리고, 팔에 힘을 주면 줄수록 나무는 죽지못해 조금씩 베어지긴 했지만 문제는 삐뚤삐뚤하여 점점 `쓸모'에서 멀어져 갔다.

그렇게라도 자른 송판대기를 양쪽에 강목을 대고 박은 다음 경첩을 박고 들어가는 입구에 문이랍시고 달았다.

그것도 문이라고 어째 집 안이 푸근하게 느껴졌다.

`한번 배운 도둑 날새는줄 모르는다'고 그렇게 해서 또 욕실의 문도 해 달았다. 제법 그럴듯해 보이기는 했지만 아구는 맞지 않는 문이었다.

그러나 저러나 내가 직접 문을 만들어 달았을 때의 그 기분은 설명할 수 있는 맛이다. 이제부터 하고 싶은 얘기는 톱질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귀농밥이 쌓여가면서 체득했다.

그러니까 톱을 앞으로 밀 때나 당길 때나 온 힘을 다 들인다고 하여 장땡이 아니다. 밀 때는 손에 힘을 빼고 밀고 당길 때에는 힘을 바짝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저 욕심껏 밀 때나 당길 때나 다 힘을 써봤자 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옛날 문짝 만들 때 용쓰던 생각이 나서 웃은 적이 있다. 우리네 삶도 그렇다.

뭐든 욕심만 부려서 될 일이 아니다.

비울 때와 채울  때, 힘을 뺄 때와 넣어야 할 때, 침묵할 때와 말할 때, 허리를 꼿꼿이 세울 때와 반으로 접어야 할 때...

다 각각의 역할, 쓸모가 있는 것을 뭐든 채워져야 하고, 힘을 바짝 줘야 하고, 떠들어대야 자신이 광이 나는줄 알았던 거다.

귀농생활이 익어갈수록 차 있을 때보다 비어 있을 때가 좋고, 힘을 줄 때보다 느긋이 풀렸을 때가 좋고, 나 잘났다고 떠들 때보다 입에 단내나도록 침묵할 때, 입안 가득 박하향이 난다는 사실을 점점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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