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농사꾼이 오늘은 겨울준비를 하러 갔다.
어제도 그의 애마 세레스에 한 차 가득 나무를 해왔는데 오늘도 나무를 하러 갔다.
연식이 오래된 세레스는 내게 인사라도 하듯 시커먼 연기를 뿜어주고 사라졌다.
날이 저물려고 망설이는 시간.

썩은 세레스가 늙은이 가래끓는 소리를 내며 가까이 닥아온다.
쌩소리나게 나가보니 어제보다 더 많은 나무가 실려 있고 그의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가 있다.
나무 내리는 것을 도와준다고 하니 다친다며 멀찍이 떨어져 있으란다.

초보농사꾼이 나무를 힘겹게 내리다 말고 “이 나무는 물푸레 나무인데 당신이 나무타는 소리에 관심이 많으니 한번 때봐. 다른 나무와 섞일까봐 맨 나중에 실었지“한다.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타는 자작나무는 경험해 보았지만 물푸레 나무는 처음이다.
이런 구석도 있구나...

직장만 다니던 남편이 귀농하지 않았다면 죽었다 깨나도 이런 세심한 구석이 있는줄 몰랐을 것이다.

꽃이 피고 그 자리에 열매가 열린다.

아무리 세상이 ‘혼자서도 잘 해야’하는 세상이라지만 열매가 열리기 위해서는 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내 인생에 기름기가 좌르르 흐르게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협조가 필요하다.

마음 밑바닥부터 우러나올 정도로 협력하는 사람은 뭐니뭐니 해도 가족, 특히 배우자이지 싶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 챙겨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 오늘 새삼스럽게 고맙다.

아직도 청춘인 것마냥 늦도록 머리쥐어 뜯으며 고독해 있느라, 낮에는 빈둥거리다 밤이 되어야 눈이 초롱초롱해져 책을 읽느라, 멀쩡한 시간 두고 모가지가 조여 오는 원고 마감일이 되어서야 머리 쥐어짜며 글 쓰느라 새벽별이 등을 떠밀어야 잠자리에 드는 나로서는 아침에 누군가 나를 눈깔빠지게 기다린다는 것이 대부분은 ‘짜증지대로’였겠지만 생각해 보니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만약에 그가 나의 기상을 기다려주지 않고 까칠하게 구는 상황 속에서 산다면, 아니 상황이 더 나빠져 그렇게 기다려줄 사람이 없다면 나의 일상은 뒤죽박죽인 채로 굴러갔을 것이다.
그래도 인생은 굴러는 가는 거니까.

그나마 나의 등장을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위인이 있으니 아침, 점심, 저녁 삼시 세 끼 밥부터 시작해서 죽어도 해야 할 일을 궁시렁거리지 않고 챙기지 싶다.

요즘 입에 많이 오르내리다 못해 뉴스 좌판에까지 올랐던 남편의 거추장스러움(?)에 대해 반기를 들고 나만이 잘난척하는 말은 결코 아니다.

생각해 보라.
언제는 그 남자 아니면 금방이라도 꼬꾸라져 죽을 것처럼 굴던 사람이 누군가.

하루만 못만나도 눈과 손바닥에 거리줄이 쳐질 것처럼 해찰을 떤 사람이 누군가.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을 뿅가게 할까에 온 신경계를 곤두세운 사람은 또 누군가를.

손깃만 스쳐도 좋아죽겠어한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나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전혀 다른 사람은 아닐테지만 상황은 그렇지가 않다.
그때 그 남자가 한 행동은 뭘 해도 이뻐 보이고, 용서가 되었으면서 같은 행동을 같은 남자가 하는데 학을 떼서야...

배우자든 자식이든 한번 삐딱하게 보기 시작하면 눈을 빼서 다시 박지 않는한 똑바로 보기 쉽지 않다.

자식들에게는 ‘초심’ 운운하며 게거품을 물고, 있는 교양 없는 교양 다 동원해 기어코 ‘초심’을 지키지 않으면 인간도 아니란 듯 아이들이 도저히 딴 생각을 못하도록 마침표까지 찍어주면서 정작 자신은 ‘초심’을 엿사먹은지 오래다.

그래도 입은 살아서 내가 변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변한 거라고 기차 화통을 삶아먹었는지있는 껏 소리쳐댄다.

또 그 사람의 단점을 너무 알아서란다.
그런 그 남자의 눈에는 나의 장점만 보였을까.

그도 맞받아칠 나의 단점을 혀바닥  밑에 묻어두고 살뿐이다.
따지고 보면 그나 나나 서로의 단점이 보이고, 결혼 초에는 하늘을 찌르던 기대치가 주식시세처럼 바닥을 치기는 피차 매일반이다.

그런 속사정을 세월밥을 먹을수록 점점 알아가다 보니 이제 상대방이 고맙고 안쓰럽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부부 사이에 흐르는 감정의 온도가 이렇게 흐르게 되면 연식이 좀 되더라도 집구석 분위기는 어려서 카스테라를 처음 먹었을 때처럼 부드럽고 향긋해질 것으로 믿는다.

내가 지금 이렇듯 입바른 소리를 하는 건 나는 다 잘 하고 있는데 어째 주위 사람들은 왜 이 모양일라는 식으로 누굴 가르치려는 것이 전혀 아니다.

이렇게 글로 박다보면 내 마음의 뜰을 누구보다 먼저 들여다 보게 된다. 그래서 우선 나발을 내게 불고 있는 거다.
한 해 끝에 서서 내게 한번 더 단단하게 못을 박는 거다.

그리고 모두가 함께 그런 문향으로 남은 생을 뚜벅뚜벅 걸어가면 얼마나 좋겠나 하는 마음의 표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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