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명 회원, 연중 4회 걸쳐 쌀 8가마 술 담궈

울진군 지원 벗어나 회비와 수익금으로 꾸려
"많은 지역민 참여하면 울진에서도 '명품주' 나올 것"

지역의 축제 때마다 부스를 마련해 애주가(愛酒家)들로부터 관심을 듬뿍 받는 곳이 있다. 소주잔 크기의 잔에 무료시음을 하다보면 ‘한 잔 더’를 외치는 애주가들과 옥신각신 작은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지난 2009년 친환경농업엑스포를 기점으로 구성된 ‘울진군가양주연구회(회장 최현경, 56세)는 가양주 전문가들로부터 집중적인 교육을 받아 울진의 고유하고 특징적인 술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3월 27일 점심 무렵 술빚기가 한창인 농업기술센터를 찾았다. 회원들은 가을에 있을 송이축제와 성류문화제에 대비해 정성과 노력, 노동력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

다부지게 생긴 외모답게 가양주연구회를 이끌고 있는 최현경 회장은 술을 빚는 전 과정에 있어 솔선수범하며 회원들과 같이 의견을 나누는 모습이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중간 중간에 틈틈이 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최 회장은 본인에 대해 “(내가)게으른 사람인데, 술 담글 때는 너무 재미가 있어 즐겁다”며 술과의 인연이 깊다(?)고 말문을 열었다. 최 회장은 조선시대와 일제 강점기를 거쳐 지난날의 술과 주세(酒稅)에 얽힌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풀어가는 설명으로 이해를 도왔다. 문헌에 기록돼 전해지는 술만 전국적으로 500~600가지 종류가 넘고, 실질적으로는 1천가지 이상이라고. 그러나 문헌에 나타나는 울진의 술(명주)은 없다고 한다.

술 빚는 방법에 따라 크게 ‘단양주, 이양주, 삼양주’ 등으로 나뉜다고 한다. 이는 누룩과 원료인 쌀의 배합 정도에 따라 달라지며, 술의 도수 차이가 있다. 밑술을 무엇(죽, 범벅, 구멍떡, 송편 등)으로 하느냐와 덧술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술 만드는 과정은 먼저 주재료인 ‘쌀 씻기’부터다. 3시간 이상을 물에 담갔다가 ‘백세(百洗)’라 하여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다. 하루 정도를 건져뒀다가 고두밥(아주 된 밥)을 만들어 충분히 식힌다. 장독에 밥을 담고 적정량의 물을 부어 밥이 엉겨 붙어 있지 않도록 손질을 하고, 미리 만들어 뒀던 밑술(누룩과 멥쌀가루)을 부어 천을 덮고 뚜껑을 덮는다.

말로는 간단하지만, 실질적으로 술을 담그기 위해서는 처음 시작부터 마무리될 때가지 모든 공정에 사람의 손이 필수적이다.

최현경 회장은 “연중 2월과 3월 5월 등 4번 정도 담그는데, 한번에 쌀 2가마(80kg)의 양을 술로 빚기 때문에 준비과정에서 노동력이 많이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쌀을 담그고 씻고, 물을 빼고 찌고, 찐 밥을 식히는 과정에 있어 사람의 손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술맛은 주재료인 쌀과 물, 누룩에 의해 좌우된다. 고두밥을 쓰는 이유는 발효력이 좋아지고 술맛을 더 낫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밥을 식히기 위해서 회원들이 모두 주걱을 하나씩 들고 주기적으로 뒤집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술을 빚기 사용되는 장독부터 보자기 하나까지 끊는 물에 소독하는 것은 빠트리지 말아야 할 필수사항이다.

장독을 밀봉하지 않고 천으로만 덮어도, 발효가 되면서 탄산가스가 외부의 공기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허투루 되는 것은 없다. 회원들은 술을 빚으면서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고 했다. ‘가양주(家釀酒)’는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빚는 사람들의 시간과 정성, 노력이 가득 담긴 ‘약주(藥酒)’라는 것이 회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가양주는 온도와 물의 양(술에 들어가는 급수율), 재료의 성질에 따라 거르는 시기가 차이가 난다. 보통 1~2개월 정도 발효를 시키고 청주와 탁주로 거른다. 보통 멥쌀 2kg와 찹쌀 10kg를 술로 빚으면 20리터(ℓ) 정도의 탁주를 만들 수 있고, 이중 5리터를 청주(淸酒)로 거른다. 술을 빚는 사람의 발효력에 따라 술의 양이 차이가 나며, ‘발효력’이 술 빚는 능력의 잣대라고 최 회장은 말했다.

가양주연구회는 14명의 회원이 연중 4회에 걸쳐 8가마의 술을 빚고 있다. 연구회가 구성될 무렵에는 군으로부터 일정부분에 대해 지원을 받았지만, 지금은 회비와 여러 축제에 참가해 판매한 수익금으로 재료를 구입하고 있다. 회원들은 집에서도 조금씩 술을 담궈 제주(祭酒)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와 실력을 쌓아가고 있다.

최현경 회장은 “지역의 80세 이상 노인분들은 대부분이 술을 담궜다. 우리군 전체에 대해 술과 관련된 전수조사를 통해 체계적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필요하고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역에도 사람들이 술을 빚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다. 군에서 교육의 기회를 확대해 참여를 유도하고 술에 대한 인식전환으로 술 빚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시쳇말로 ‘미친 사람’들이 나오면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좋은 술이 나오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고 말했다. 술 개발을 통한 산업화보다 저변확대가 쌀 소비 촉진을 장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최근 올해부터 전 세계에서 연간 100병만 생산되는 ‘발렌타인 40년’이 국내 출시됐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발렌타인 40년의 가격은 800만원(700㎖, 백화점 기준)으로, 한잔(35㎖) 당 40만원인 셈이다. 주문 후 수입되는 방식으로 판매된다고 한다. 술에 대한 가치는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이상의 고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지역에도 시행착오를 걸친 ‘자타가 공인하는 감칠맛 나는 술맛’이 나온다면, 지역의 브랜드 가치 상승과 함께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술이 가지는 문화적 상품 가치는 높다. 최 회장의 지적처럼 생각의 전환을 통해 울진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가면, 이는 결국 지역의 경쟁력 강화와도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울림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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