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선거 치렀다 자부"

2천300표·3% 지지 … "졌지만 충분한 가치"

“지금부터 새로운 싸움의 시작, 선거를 통해 뼈아픈 각성의 시기를 보낸 것은 분명하다. 그래도 꾸준히 생활 속에서 주민들과 함께하기 위한 노력들을 진지하게 진행할 것이다”

지역의 선거에서 19대 총선에 출마한 녹색당의 박혜령 후보처럼 선거 운동기간 동안 다양한 볼거리를 선보인 후보자도 없었다. 소수 정당(인)으로서 선거의 새로운 혁명을 꿈꾸며 ‘선거가 민주주의의 축제’라는 말을 실천해 보여, 지역의 유권자들이 수십 차례 보아왔던 기존의 선거판에서는 미처 경험하지 못했던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이번 총선에서 다른 후보자들이 이렇다 할 논쟁거리를 제시하지 못해, 탈핵과 농민후보임을 내세운 녹색당 박혜령 후보가 선거 기간 내내 밋밋한 선거판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본격적인 선거운동의 시작점인 3월 28일 포항MBC에서 진행된 후보자 토론회에서는 방독면을 직접 챙겨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방독면 아지매’라는 애칭으로 주민들로부터 관심을 끌었다. 박혜령 후보는 “농촌 주민들이 비교적 일찍 자는 편이라서 심야에 방송된 토론회를 그다지 많이 보지 않았을 줄 알았는데, 토론회 이후로 날 알아보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고 회상했다.

박혜령 후보를 지난 4월 19일 영덕읍에 소재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선거 과정에서의 이야기와 이후 지역현안들에 대한 해결방향들에 대해 박 후보는 차분한 어조로 한마디 한마디 힘주며 말했다. 선거 이후 지역의 주민들이 따뜻한 미소와 인사에서, 선거 때보다 더 많은 관심과 위로와 시선들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어떻게 주민들과 만나야 되는가에 대한 인식도 배웠다고 했다.

박 후보는 “핵발전소와 같은 심각한 주제를 다루었지만 선거기간 내내 딱딱한 선거 유세가 아닌, 운동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즐길 수 있는 형태의 유세를 하고 싶었다”며 “반핵 퍼포먼스가 특이한 형태의 문화 행사라 주민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했는데 상당히 재밌어 하시는 것 같아 즐겁고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를 통해 지역의 문화 결핍과 주민들의 문화적 갈증과 욕구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박 후보의 선거운동은 이제 갓 스무살이 된 유권자와 40대 중반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자원봉사로 진행됐다. 그들은 순수한 열정으로 녹색당의 가치를 전파하는 데 주력했다. 박 후보는 “선거운동원이 후보자 뒤에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자기 역할을 똑같이 수행했다”며 “누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중요한 ‘나’로서 자신이 가진 능력을 나누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선거를 치르자는 대원칙이 있었다”고 말했다. “전국에서 십시일반으로 도움을 줬다. 자랑스러운 선거였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는 어쩌면 초라해 볼 수 있는 선거일 수 있겠지만 그 가치를 눈여겨 봐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박 후보는 이번 선거를 통해 여러 가지를 깨우쳤다고 했다. 가령 주민들과 대화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것. 주민들에게 힘 있게 다가가지는 못했지만, 제 나름의 진정성을 갖고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고민하는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돌다리를 하나 놨다는 것. 주민들이 녹색당의 정강이 비록 건강한 대안이지만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대안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털어 놨다. 박 후보는 “주민들이 내 삶의 가치를 대변하는 사람을 선택하고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능동적 주체적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며 선거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녹색당의 당론이자 의제인 ‘탈핵’과 관련해 “울진 지역의 핵발전소는 주민들의 생계와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폐지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 주민들이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후쿠시마 사고처럼 주민의 삶을 송두리째 날려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결국 폐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원자력발전소의 문제는 에너지 문제를 넘어, 지역문화의 문제와 민주주의 문제와도 결부된다. 주민들이 건강한 사고를 할 수 있어야 참다운 주인의식으로 의견을 표명하며, 핵발전소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가 가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 후보는 이번 총선 결과를 나름 분석해 주민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고 했다. “핵발전소와 같은 이슈에는 주민들의 마음속에 표로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결정과 판단이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며 “새누리당의 표밭인 이곳에 전혀 다른 의제를 가지고 주민들에게 다가간 것은 분명 뚜렷한 의미가 있다. 아직 미진한 부분이 많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생활 속에서 주민들과 함께하기 위한 노력들을 진지하게 해날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이 현재의 권력을 거부하는 것에 두려움이 있더라”고 진단한 박 후보는 “주민들은 권력을 가진 자에게 종속되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 생활 속에서부터 하나씩 깨트려 나가야 된다. 권력은 누군가의 위에서 군림하고 지배하는 ‘힘’이여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울진에서 소통 부족과 함께 주민들의 자괴감을 느꼈고, 기왕 있는 것(원자력발전소)을 ‘어떻게 하겠어?’라는 패배의식도 옅봤다고 했다. 그런 와중에 “내일 당장 원자력발전소가 없앨 수 있다면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는 원전으로 인해 상처받은 일부 주민들의 모습을 선거운동을 통해, 미처 깨닫지 못한 원전의 또 다른 문제점을 보았다.

한편 FTA에 대해 박 후보는 명확한 반대 입장과 닥쳐올 위기에 대해 심각성을 제기했다. “우리 농촌의 현실인 FTA로 인해 10년 내 국내의 농업기반은 거의 붕괴된다. 농업 기반의 붕괴는 국가 존립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며 “식량주권은 반드시 지켜야 하고 종자 시장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영덕군 창수면에서 감자와 고추, 담배 등 7천여평을 남편과 둘이서 힘이 닿는 데까지 경작하고 있다. 미래의 지속가능한 사회인 ‘생태의 가치’가 온전히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세상을 제안하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앞으로도 해 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박 후보는 앞으로 4개 지역을 돌며 주민들과 다시 만난다고 한다. 진정성을 가진 박 후보의 가치와 신념이 주민들에게 전파돼 더 살기 좋은 지역으로 만들어지기를 희망하는 그녀의 꿈이 현실로 다가오기를 기대한다.

“지역발전은 도로를 뚫고 건물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가치에 대한 고민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에 어떤 가치를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박 후보의 말이 오래 가슴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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