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일왕산 대왕소나무에 안기다!

-근남면 행곡리 금산에서 아구산을 거쳐 북면 두천리 안일왕산으로 가는 여정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지상의 길과 같다. 사실 지상에는 본래 길이 없다.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또한 곧 길이 이루어지는 것이다.”[중국의 사상가 루쉰「고향」중에서 ‘희망이란...’]
“등산여인생 인생여등산(登山如人生 人生如登山). 산에 오르는 것은 인생과 같고, 인생은 산에 오르는 것과 같다.” 누구나 한 번 쯤은 들어본 말이다.
살아간다는 것이 산을 오르는 것처럼 오르락내리락하며 때론 예기치 못한 난관들에 부딪치게 되고, 때론 길을 잘못 들어 헤매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각자가 자신의 의지를 모아 힘겨움과 두려움을 견뎌내며 극복하고 다시 한 걸음을 대딛는다.
‘두발로 걷은 울진의 산야’라는 주제로 기획/연재를 시작한다. 모든 길 위에는 아련한 추억과 함께 슬픔 기쁨 노여움 즐거움 등 희로애락이 겹쳐 있다. 그 길에서 우리는 위로받고 다시 격려하며 추억을 쌓아 살아가는 용기와 희망을 얻는다.
지역의 곳곳에도 누군가에게 다양한 기억을 품고 있는 길들이 산재해 있다. 그 길을 따라 얽힌 사연을 들추고 추억을 끄집어 보기를 희망한다. ‘두발로 걷는 울진의 산야’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유년의 추억들을 각자의 길과 함께 하기를 소망한다. 그 길에서 위로받고 힘을 얻어 지난한 삶의 현실에서 행복감을 가져보기를 기대한다.
길 위에서 굳이 무엇을 얻고 깨달아야 하는 목적을 갖기 보다, 향수의 조각들을 모아 팍팍해져가는 오늘의 현실을 넘어서는 기분 좋은 자양분이 됐으면 하는 바람 가득하다.
한편 산에 오르는 것이 목표가 정해져 있고 앞서 이 길을 걸어간 사람들이 만든 길이 있는 반면에, 우리네 인생에 있어서는 각자가 모두 그 목표가 정해져 있지만, 어떻게 가야하고 자신이 가는 길이 과연 옳고 바른 길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진다. 의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그 답을 찾기 위해 계속 나아가는 것은 아름답다.<편집자 주>

첫 번째 찾아 나선 길은 최근 지역민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근남면 행곡리 금산에서 울진읍 대흥리 아구산을 거쳐, 북면 두천리의 안일왕산로 이어지는 산길이다. 산행은 지난 2월 2일 겨울의 끝자락에서 햇살과 바람으로 봄기운을 느끼게 해 준, 선물과도 같은 날이었다. 동행(同行)한 일행은 이날 길잡이를 해준 전종석(51세, 울진읍) 홍양기(51세, 울진읍) 세 사람이었다. 아침 8시 10분이 조금 넘어 시작된 산행은 임도를 따라 저녁 5시가 조금 넘어 북면 두천2리에 도달함으로써 첫 시작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40여 분간 가쁜 숨을 몰아쉬며 9시경 금산 정상(388미터)에 올랐다. 금산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기암절벽이 어우러진 불영사계곡과 그 위로 힘차게 뻗는 산의 기운들, 그리고 유유히 동해로 흘러 들어가는 왕피천의 물결이 만들어 낸 지형은 오를 때마다 감탄을 자아낸다.
산불감시 초소에 올라 오늘 가야할 길을 손으로 더듬어가며 짚었다. 언제쯤 산행을 마무리하고 종착지에 도착할 수 있을지 까마득하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한발 두발 더하면서 지친 다리와 몸뚱이를 격려하며 큰 숨 한번 쉬고 묵묵하게 걸어가야 된다고 다짐한다. 그저 그렇게 걷는 방법 외에는 없다. 전종석씨로부터 오늘 가야 할 길을 설명 듣는다.



아구산(울진읍 대흥리)을 지나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안일왕산까지 그 거리를 어림잡아 헤아려본다. 언제 저 길을 지나 목표했던 지점까지 갈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듣다. 힘듬을 알기 때문이다. 물 한모금과 귤 한 개로 목을 축이고 숲길로 접어든다. 길은 상당히 좋았다. 몸이 저절로 상쾌해짐을 느낀다.


금산 정상에서 보았던 고압 철탑을 지났다. 산에서 만나는 철탑은 현대 문명의 무서움을 일깨운다. 멀리서 볼 때는 작아 보이지만 그 밑을 지날 때는 그 크기에 압도된다. 그러나 철탑 역시 산에서는 하나의 작은 것에 불과하다. 산이 감싸 안아 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간이 편리함을 계속 추구하다 보면, 문명을 잠시 떠나고 싶은 우리들은 어느 곳에서도 문명의 잔인한 흔적을 볼 수밖에 없다. 아니 그렇게 벗어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상념이 들자, 마음이 무겁다. 고압선이 흐르는 산, 그 속에서도 생명을 키우는 무수한 생명체들이 그저 고맙고 대단하다.


아구산으로 가는 길의 산은 송이가 생산된다고 한다. 견물생심이라, 지금은 송이가 나지 않으니 이렇게 자유롭고 넉넉하게 갈 수 있으리라. 송이산은 산주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솔잎이 떨어진 것이 마치 부드러운 융단을 깔아 놓은 것 같다. 송이산의 정돈이 말끔하다. 정성을 읽었다. 솔잎 위를 맨발로 걷고 싶은 충동이 발길을 붙잡는다. 언제 기회가 되면 꼭 맨발로 걷고 싶다.


산에서 만나는 꼬리표는 반갑다. 특히 길이 여러 갈래로 나 있어 어디로 가야 할지 헷갈릴 때는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헤어져 있던 반가운 님을 만난다고나 할까? 서산대사는 ‘눈밭을 걸을 때 어지러이 걷지를 말라고 했다.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기에...’
먼저 이 길을 지나간 사람들이 남긴 꼬리표는 계속 이 길을 오고갈 사람들에게는 좋은 이정표이다.
산행 1시간40여분만에 만난 큰길(?). 전종석씨는 이 길에 대해 또렷한 기억을 들려줬다. 자신이 초등학교 다닐 무렵 현재의 36번 국도가 개통되기 전 버스가 이 길을 다녔다고 한다. 버스 뒤에 매달려 학교를 다녔던 개구쟁이 시절도 추억을 더듬었다. 현재의 나로서는 경험하지 못했기에 “정말이요?”라고 연신 반문한다.


동행한 홍양기씨는 소나무(울진금강송)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현했다. 산길에서 만난 이곳저곳에 자리 잡고 곧게 뻗어 있는 어린 소나무들의 군락을 볼 수 있었다. “이 또한 수십 년이 지나가면 지역의 소중한 자원임에 분명하다. 지금부터 가꾸고 준비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또 산길에서는 수많은 무덤을 만난다. 조상의 음덕을 빌어 발복(發福)하고자 하는 후손들의 마음이 드러난다. 어떻게 여기까지 와서 무덤을 썼을까? 당시에는 아마 많은 사람들이 다녀 저절로 길이 있었을 것이다. 무덤들은 대부분 깔끔하게 관리돼 있어 후손들의 손길이 계속 되고 있다. 한편으론 시간이 많이 지난 무덤들은 그렇게 자연의 일부분으로 돌아가고 있다.

산행하기에 엄청 좋은 날을 선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산의 그늘진 곳에는 눈이 여전히 있다. 방심하지 않고 긴장을 하게 만든다.
아구산으로 오르는 길. 곳곳에는 송이철 움막을 지었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온돌을 깔아 불을 뗀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굴뚝도 있다. 지난날 얼마나 많은 송이가 산출됐는지를 미뤄 짐작한다. 멧돼지가 파헤쳐 놓은 흔적. 가끔 만나는 각양의 소나무들은 신기하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했던가? 사람의 손길이 전혀 없는데도 그 모양이 독특하다. 갖은 풍상의 세월 속에 저절로 이뤄진 소나무 줄기들이 만든 선이 아름답다. 때론 토끼길처럼 좁은 길를 따라 걷는 맛도 좋다. 그만큼 이 길은 찾는 사람의 발길이 뜸해 자연 그대로 보존돼 있다. 이 길이 이렇게 계속 보존되어야 하지만, 앞으로 인간의 무자비한 발길에 얼마나 제 모습을 간직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산의 한쪽은 눈이 모두 녹아버렸지만, 한 쪽은 아직 그대로 한 겨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가는 겨울이 못내 아쉬워서 일까? 아니면 수없이 왔다가 가는 계절이지만 봄을 맞이하는 준비가 덜 된 것일까...


아구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서 상처를 그대로 안고 있는 소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소나무들이 산불로 인한 화마의 상흔과, 배고프고 굶주렸던 시절 소나무 송진을 얻기 위해 껍질을 벗겼던 흔적들이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소나무에 그대로 남겨져 있다. 소나무들은 그렇게 산불로 동료를 잃고 자신의 몸에 생채기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채 수십 년을 제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값비싼(?) 생각일 줄 모르나, ‘살아가기 위해 인간이 자연에게 무차별적인 행위들이 과연 정당한 될 수 있을까?’라는 다소 엉뚱한(?) 생각이 아구산 정상을 오르며 머리 한쪽을 차지했다.
전종석씨는 아구산에서 자신의 유년시절 기억을 떠올렸다. 전씨는 아구산 바로 아래에서 초등학교까지 생활했다고 한다. 전기는 당연히 없었다. 친구들과 소를 몰고 산 정상까지 올라 꼴(풀)을 먹였다고 한다. 당시(지금으로부터 35년 전)만 하더라도 산 정상에는 소나무보다 풀이 더 무성할 정도였다고 한다. 정상에 오르는 길 한쪽에는 참호를 파 놓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산행 2시간 반만에 아구산 정상(652미터)에 도착했다. 바위 위의 돌을 쌓은 것이 시선을 잡았다. 누군가가 자신의 행복이든, 이 산에 오는 사람들의 안전을 기원했던, 그런 마음들이 쌓여 있는 것 같다. 하나하나 쌓아 올린 정성을 읽고 느낀다. 바위에 올라 전망한다. 바로 아래는 낭떠러지라 아찔하지만, 겹겹이 이어진 능선들이 눈 아래 가득하다.

12시50분. 걷기 시작한지 약5시간. 중간 중간에 목도 축이고, 가져온 주전부리로 에너지를 충전도 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점심 먹을 시간이다. 김밥과 라면, 김치 이것이 점심의 전부이지만,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듯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는다. 꿀맛이다.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안다. 라면의 따뜻한 국물이 얼마나 그리운 지를... 후식으로 사과를 먹는다. 낙엽 위에 눕는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유난히 햇살이 부드럽다. 그냥 한 숨 푹 자고 싶다는 생각도 간절하다. 더 부러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작은 것에 만족하며 살 수 있는데, 현실로 돌아오면 하나라도 더 남들보다 더 가지기 위해 얼굴 붉히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다. 다리도 주물러주고 기지개도 힘껏 켠다. 다시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안일왕산의 신목(神木) ‘대왕소나무’를 향해 발걸음을 대딛는다. 40여분을 부지런히 내려간다. 임도를 만났다. 임도에는 눈이 아직 그대로다. 산으로 발을 디딘다. 본격적인 안일왕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 길을 다니는 사람은 극소수이었다고 한다. 이후 대왕소나무의 존재가 일반인들에게 알려지면서 지역에서도 이 길을 찾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 산 능선에 오르면 성인의 한 아름을 훨씬 넘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안일왕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만났다. 한보따리의 겨우살이를 둘러메고 총총히 가는 모습이었다. 좀 지나다 보니 한 움큼이 조금 넘는 참나무가 톱으로 베어져 있다. 잔인했다. 인간의 야만성과 치열함이 무섭다. 꼭 이렇게까지 해서 겨우살이를 따야 하는 것인지, 겨우살이를 우려낸 물을 먹지 않으면 낫지 않는 불치의 병에라도 걸린 것인지, 씁쓰레함이 가시질 않는다.


안일왕산의 정상에 오르는 길. 산에 오르다보면 길인지 아닌지 헷갈릴 데가 있다. 안일왕산 정상에 오르는 길이 그랬다. 바로 눈앞에 정상이 보이다 보니, 둘러가는 길을 보지 못했다. 발가락에 잔뜩 힘을 주고 가쁜 숨을 몰아쉰다. 거리는 짧지만 낙엽 밑이 그동안 내렸던 눈과 비로 인해 얼어 있다. 순간 방심하면 미끄러지기 일쑤다.


그렇게 나름 사투(?) 끝에 정상에 오르는 능선에 올라선다. 오후 3시20분. 지나온 길을 둘러 봤다. 저 멀리 아구산 봉우리가 보인다. 참 멀리 걸어 왔다. 굽이쳐 흐르는 산의 능선들이 가득하다. 눈이 즐겁고 마음이 편안해지니 여기에 디디고 서 있는 내가 저절로 행복감에 젖는다. 끊어질듯 이어지는 산 능선의 부드러움과 힘을 느낀다. 새처럼 훨훨 그 위를 날고 싶다. 걸으면서 나무를 보다가 잠깐 쉬면서 숲을 보고 산 전체를 보려고 노력한다. 나는 어디에 있는지... 저 멀리 보이는 인가(人家)들이 작은 점으로 눈에 들어온다.


안일왕산 정상에서 옛 고성의 흔적을 밟으며 대왕소나무로 향했다. 내려가기를 10분. 능선의 한 자리를 당당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대왕소나무! 뭐라 표현할까? 그저 감탄사만 연발할 뿐이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든, 뛰어난 화가가 그림을 그리던... 대왕소나무가 가지고 있는 그 느낌들을 그대로 담아 낼 수 있을까? 아니 그 느낌을 담아 표현해 낼 수 있다면 엄청난 감동이다. 대왕소나무를 안는다. 아니 안긴다고 하는 표현이 더 맞다. 각자가 느끼는 것들이 다를 터이니 직접 볼 수 있다면 가장 좋은 것이리라. 얼마나 오랜 세월 풍상(風霜)를 겪으며 이 자리에 있었을까? ‘상송상청(霜松常靑),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야(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 소나무의 푸르름을 표현한 선인들의 표현은 많다. 모두가 고난을 이겨낸 그 모습에서 살아있음을 이야기한다. 대왕소나무에 대해 이런저런 표현을 하는 것은 거추장스럽다. 눈앞에 두고 온몸으로 느끼고 받아들이면 된다.

산을 오르내리며 이미 옷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능선으로 올라설 때마다 등과 이마, 피부로 직접 느끼는 바람이 상쾌하다. 더군다나 이날은 겨울의 끝자락에서 하늘이 내려 준 선물과도 같은 날이다. 하루 전날까지 날씨 걱정을 하였지만 그런 걱정이 괜한 기우였듯, 하늘은 바람마저 부드러움을 선사했다. 온몸으로 감사하다는 마음이 절로 든다.
산행을 여러 명이 하게 되면, 사람 인(人)자처럼 서로 의지가 됨을 몸소 느낀다. 서로 격려가 되고 힘이 된다. 힘든 길도 같이 걷다 보면, 결국 자신이 직접 올라가야 되는 길이지만 ‘조금 더, 한발만 더’라는 생각으로 견뎌낼 수 있다. 긴 오르막에서는 침묵하며 땅과 앞사람의 뒷발을 보면서 한발 한발을 더한다. 그러다보면 능선에 오른다.
정상에 올라 내려다보면 밑에서는 보이지 않는 멀리 떨어진 마을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나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숲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른다. 손을 뻗으면 잡힐 듯 동해바다도 가슴 한가득 들어선다.
길에는 각자의 삶과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 있음을 알았다. 루쉰 선생의 말씀처럼 길은 사람이 다녀야 생기고, 사람의 발길이 끊어지면 자연스레 묻히는 것 같다.
오늘 이 길에서 무엇을 배웠고, 동행한 친구사이인 두 사람은 무엇을 얻었을까? 아니 당장 무언가를 얻고 배우지 못하더라도 계속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한 것 아닌가! 같이 어우러져 함께 걷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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