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같은 날 , 다른 풍경이 어디 한 둘 일까마는 ‘ 어버이날 ’ 의 풍경이 내겐 그랬다 .

귀농 전 , 도시인들의 대부분의 ‘ 어버이날 ’ 은 달랑 내 부모 , 배우자의 부모에 대한 생각뿐이다 .

한참 전부터 어떤 선물을 해야 하나 , 무얼 먹어야 하나 , 어딜 모시고 가야 뻐근할까 하는 생각으로 머리통을 꽉 채운다 .

그리고 저마다 각자의 ‘ 어버이날 ’ 을 각자의 색깔로 칠해간다 .
그러나 내가 귀농한 이곳 금강송면 쌍전리의 ‘ 어버이날 ’ 풍경은 전혀 다르다 .

각개전투로 치러지는 도시의 ‘ 어버이날 ’ 과는 달리 이곳 산중마을의 ‘ 어버이날 ’ 은 온동네가 함께 치른다 .

며칠 전부터 부녀회 간부들이 모여 어떤 음식으로 상을 차릴지부터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

때가 때니만큼 봄 농사 일에 치여 정신없이 밭에 엎드려 있어야 하겠지만 이 날만큼은 제일 깨끗하고 정갈한 옷으로 차려입으시고 골짜기 곳곳에 새집처럼 푸근하게 들어 앉은 자신의 둥지에서 일제히 나와 ‘ 마을회관 ’ 이라는 나눔의 장소로 모여든다 .

자식들에게 받은 꽃을 가슴에 달고 오신 어르신들은 가슴의 붉은 카네이션만큼이나 자식에게 받은 사랑이 강렬해서인지 그 어느 때보다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가 계신다 .

아침 일찍부터 젊은 엄마 ( 여기서는 젊은이라고 해봤댔자 40~50 대를 말한다 ) 들이 온동네 어르신들께 대접할 음식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

우리 마을은 번성기 때는 100 가구 가까이 되었다지만 현재는 30 가구 정도 되기 때문에 약 40~50 인분 분량의 음식을 장만한다 .

국도 끓이고 , 잡채도 하고 , 떡도 준비하고 , 속이 든든해야 한다며 한우 불고기도 마련하는 등 큰 잔칫날이다 .

정성껏 준비한 음식들이 상마다 차려지면 남자 , 여자가 ' 유별하다 ‘ 는 암묵의 관습이 남아 있어서인지 남자와 여자가 각각의 방에 칼같이 나누어 앉으시는 어르신들 ...

그러고 나면 마을이장과 새마을지도자 , 부녀회 임원은 어버이날을 축하드린다며 마을 어르신들께 큰절을 올린다 .

모두가 내 부모요 , 삼촌이요 , 숙모님이다 .

마을의 큰 행사이니 이 마을이 속한 금강송면의 수장이신 면장님이 오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

이번에 금강송면으로 행정명칭이 변경되고 초대 면장으로 오신 정만교 면장님께서 노용성 산업계장님과 함께 소주 한 상자를 들고 마을 어르신들을 찾아 오셨다 .

정만교 면장님은 이번 금강송면으로 면의 명칭이 바꾸게 됨으로써 보다 발전된 모습으로 거듭날 것과 어르신들의 건강과 안녕을 빌어 주셨다 .

그 외에도 먼 외지에 나가 살고 있는 자식들은 마을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찬조금을 보내오기도 하고 , 술과 음료 등을 보내오는데 그것은 아마도 “ 우리 부모님을 잘 부탁드려요 ”하는 당부와 고마움의 표현이란 생각이 든다 .

서울에서 귀농한 나로서는 이런 ‘ 어버이날 ’ 풍경이 처음엔 낯설었다 .

그러나 해가 거듭될수록 공동체적 삶이 주는 행복과 즐거움 , 평온함을 하나하나 터득하기 시작했다 .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올바르게 정립되기 위해서는 바쁜 현대인들의 역할의 일부를 공동체가 맡아서 함으로써 마을 전체가 활기차고 건강하게 유지되는 것 또한 중요한 사항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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