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은 그리움에 지치고, 사람들의 이중성에 이가 갈리고, 내게서 나간 것에 비해 들어오는 것(그것은 금전적인 것이 아니고 인간적인 것일 때를 말함)이 택도 없을 때,

기가 막혀 나동그라져 있다가도 이내 달뜬 소리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이러고 있으면 나만 손해지. 이 아까운 시간..’하며 제 몸뚱이를 오뚜기처럼 발딱 세워 땅에 꽂아놓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내가 대견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한 날이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그런 내 자신에게 정나미가 떨어질 때가 있다.

나자빠지면 퍼질러 앉아 뭉개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면 아프다고 세상이 몰라줄까 소리소리 지르기도 하고, 이용 당했으면 쫓아가 멱살잡이라도 하고 육두문자를 써가며 손가락이 마구 허공을 떠다닐(?) 정도로 삿대질을 해대면 내 정신세계가 최소한 골벙들지는 않을텐데...

이 염병할 놈의 이성과 의식만 눈 동그랗게 뜨고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해대니 ‘정신적 오뚜기 기질’은 녹슬지도 않는다는 생각이 오늘 든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내가 ‘정신적 오뚜기 기질’ 때문에 이 낯설고, 연고도 없어 무인도같은 곳인 울진 산중에서 아이들을 긍정적으로 키우며 이 자리에 섰지 않은지 하는 생각에 미치니 자신이 한도 끝도 없이 신통해진다.

아무래도 오늘은 나와 영혼의 탯줄로 연결된 자식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것이 극에 달한 모양이다.

아주 헤까닥 헤까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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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50사단 훈련소에 아들을 두고 와서는 한증막 안에서 떨어지는 모래시계처럼 시간이 참으로 참으로 느리고, 힘겹게 지나간다는 것을 느끼며 숨막혀 했었다.

앞에서도 썼지만 이대로 그리움을 꾹꾹 누르며 지내는 것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게거품 물어가며 말해준 평소의 가치관과 당부 등에도 위배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아이들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등의 당부를 번지르르하게 하면서 정작 침튀긴 자신은 실천을 안해서야 되겠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나무를 심기로 했다.

군대라는 새롭고 낯선 세계로 향하는 아들의 건강과 그곳에서 많은 지혜와 깨달음을 얻길 바라는 마음과 그리울 때마다 나무 앞에서 서서 말을 걸기 위해서다.

또 고3인 딸 주현이를 응원하고 격려하기 위해서다.

딸 아이가 기숙사에서 지내다 보니 고3이라도 얼굴보기도 힘들다.

내 맘같으면 부모 품으로 주말마다 보내주었으면 생각했다.

그래야 아이 정서상 좋겠지만 2주에 한번 보내주고 있고, 고3이라고 토요일, 일요일도 출근을 하란다.

가족 얼굴 볼 시간도 없는 우리나라의 고3이다.

그러다 보니 엄마에게 힘든 마음을 기대지도, 풀어놓지도 못하고 어른스럽게 묵묵히 힘든 길을 가고 있는 딸을 위해 또 한 그루의 나무를 심기로 했다.

봄날 연분홍 치마를 입은 새색시처럼 화사한 ‘서부 해당화’를 두 그루 샀고, 수국처럼 몽골몽골 피어나는 ‘불도화’를 울진 장날 거금주고 한 그루 샀다.

초보농사꾼도 내가 진종일 장을 돌고 또 돌면서 신중히 나무를 고르는 이유를 알기 때문에 지루해하지 않고 천천히 잘 고르라며 용기를 주는 팔자에 없는 짓을 하고 있다.

이 나무는 내가 여지껏 심은 다른 나무와 달리 자식을 키우는 마음으로 심어 기르고자 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나무를 신중하게 고르며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에 나오는 엘제아르 부피에를 떠올렸다.

"만일 하느님이 30년 후까지 자신을 살아있게 해 주신다면, 그동안에도 나무를 아주 많이 심을 것이기 때문에 이 1만 그루의 나무는 바다의 물 한 방울과 같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는 대목이 말이다.

정말 그는 누가 보아주지 않는 그 거친 산에 묵묵히 나무를 심었고 그것은 기적이 되었다는 실제이야기가 담겨있는 책을 나는 자주 읽는다.

꿈과 희망은 지금 당장은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다룬 글 중에 이처럼 소박하고, 진실된 이야기가 있을까...

뭐, 달랑 세 그루의 나무를 심으면서 그 위대한 사람을 떠올렸는지 의아했겠지만 모든 위대한 것의 시작은 다 미미하고, 초라하기까지 했다는 것을 알기에 크게 기죽지 않고 아이들을 위해 올해처럼 그렇게 내년에도, 후년에도 쭉 나무를 심어 키울 것이다.

남들이 게워놓은 그리움을 내가 다 떠안은 듯 군대간 아들이 그리울 때 아들나무에게 말을 걸면 그 파리한 이파리가 내게 손을 내밀 것이다.

딸 아이가 힘든 고3 생활을 하루하루 이겨내는 것을 볼 때마다 부피에처럼 묵묵히 심은 나무에 물을 줄 것이다.

그 나무들에서 신생아 새끼 손톱처럼 투명하고 맑은 잎파리가 돋아나면 산골의 온갖 새들을 불러 ‘나무들이’를 하고 그 줄기가 튼튼해지면 거기에 놀러와도 좋다는 말과 거기에 둥지를 틀어 분만실로 써도 좋다는 말을 해줄 것이다.

그리하여 아이들의 나무에서 또 다른 새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

그렇게 한 해가 가면 또 다시 나는 한 살 더 먹은 아이들을 위해 또 나무를 심고 지성으로 기를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는 나무에게도 혼이 깃들어 그 나무를 심을 때, 산골아낙이 중얼거렸던 절절한 기원을 그가 기억했다가 나 자는 사이에도 그는 그 기도를 내 대신 병풍처럼 둘러쳐진 자연에게 해댈 것이다.

내가 마당에 서면 나무의 안색을 잘 살필 수 있는 위치를 정하고 땅을 팠다.

구덩이에 물을 길어다 흠뻑 준 다음 애기 다루듯 불로화를 넣고 두둑하게 흙이불을 덮어주었다.

이 나무들의 퇴비는 '그리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바람에 이리저리 휘둘리지 말라고 지줏대(이건 초보농사꾼의 고추지줏대 ㅋㅋ)도 하나 꽂아주고 끈으로 몸을 묶어주었다.

불로화는 장에서부터 살 때부터 매달고온 화려한 꽃송이를 모두 잘라주었다.

새로운 터전에 뿌리를 내리는데 온 힘을 쏟아야 하는데 모든 힘을 그 꽃의 유지에 쏟기 때문에 새로 뿌리를 내려야 하는 식물은 열매든 꽃을 잘라준다는 것을 배웠었기 때문이었다.

그 꽃을 자르며 생각하니 우리네 귀농의 삶도 그런 것 같다.

도시에 말뚝 박았던 둥지를 캐서 자연에 다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도시의 화려한 겉치레들을 단칼에 잘라내야 한다.

그래야만 영혼이 기름진 쪽에 모든 에너지를 치중할 수 있고 귀농이라는 나무가 어떤 바람에도 흔들림 없이 잘 성장하는 것과 같은 것처럼...

말이 샜다.

나무를 심는 일은 많은 것을 변하게 하고, 그것을 기르는 과정에서 많은 깨달음과 용기를 준다는 말은 진리라고 생각한다.

이제 난 나무의 목을 축여주면서 아이의 안부를 그에게 물을 것이고, 군대간 아들이, 기숙사에 있는 딸이 그리워 목젖이 뎅그랑거릴 때 그 목젖을 울리며 나무에게 말을 걸 것이다.

이제 부로치처럼 화려하게 달고온 ‘서부 해당화’의 꽃들도 자리텃 하느라 시들어 떨어졌고 이내 뿌리를 내렸다는 뜻으로 옅은 새 잎을 내밀어 내게 보여줄 것으로 굳게 믿었었는데 그들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자연은 배신 때리는 일이 없다.

근 한 달 공을 들였더니 불그족족한 새 잎을 삐죽이 내밀어 주었다.

그리고 나는 함석 물조리개로 '서부 해당화'나무와 불도화에게 더 열과 성을 다해 물을 주고 있으며 또 다른 변화를 꿈꾸고 있다.

(이 글은 2012년 5월에 쓴 글이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 배동분 : 2000년에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리로 귀농하여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글을 짓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산골살이, 행복한 비움>, <귀거래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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