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된 도시 중산층의 삶을 버리고 서면 쌍전에서 사는 재미

박찬득, 배동분 부부는 울진사람이 아니다. 울진으로 이사오기 전에는 울진이라는 이름도 잘 들어보지 못했으리만큼 울진과는 인연이 없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부부는 토끼 같은 두 남매를 거느리고 서면 쌍전리에 정말 토끼굴 같은 집 속에서 알콩달콩 살고 있다. 이들은 귀농가족이다. 잘 나가던(?) 서울 중산층으로서의 삶을 과감히 내던져버리고 자연과 함께 욕심없이 살고 싶어 쌍전리로 이사온 것이다.

스스로 산골남자로 불리길 원하는 남편 박찬득씨는 모 자동차판매회사의 소장이었고, 아내인 배동분씨는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해 오던 인테리들이다. 박찬득씨는 "이기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가 답답했고, 더 큰 아파트, 더 높은 직위, 더 좋은 자동차를 추구하는 도시의 삶이 싫어져 귀농을 결심했다''고.

처음에는 남편의 귀농을 반대했다는 배동분씨도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에 갇혀 학원만을 기웃거리며 자라나는 아이들이 안쓰러웠고, 무엇보다 늘 믿음을 주던 남편의 결심을 큰 맘 먹고 따라 보기로 했다''며 귀농 사연을 풀어놓았다.

1999년 12월 귀농한 이들 가족은 난생 처음으로 밭에 씨를 뿌리고 김을 멨으며 또 수확의 기쁨도 맛보았다.

귀농을 결심하면서부터 사전 준비를 착실히 한 덕분에 유기농재배로 유명한 방주공동체의 일원이 돼 재배방법을 전수 받는가 하면 수확한 제품의 판로에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얼마 전에는 방주공동체 사람들과 함께 공동사업으로 장 담그기를 하기도 했단다. 주로 경작하는 것은 야콘과 고추로 모두 무농약, 무화학비료를 실천한 유기재배농산물이다.

이들 부부가 귀농을 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것은 다름 아닌 아이들 문제.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선우, 주현 남매는 기특하게도 산골의 또래 아이들과 잘 어울렸고 이제는 시골에서 즐겁게 노는 법을 많이 익혔다고.

무엇보다 지겹던 학원에 가지 않아서 좋고, 아빠, 엄마 얼굴을 하루 종일 볼 수 있어서 좋단다. 하지만 피아니스트가 꿈인 주현이는 피아노학원을 갈 수 없는게 불만이다.

기자가 집을 찾은 날 이들 가족은 농사철을 앞두고 겨울 한철 동안 쉬게 했던 밭에 거름을 뿌려주고 있었다.

아이들도 저마다 자신들의 덩치에 맞는 도구들을 들고나와 네 가족 모두가 힘차게 거름을 뿌리는 모습을 보니 괜히 부럽고 질투가 난다. 대도시도 아닌 작은 울진읍내에 사는 기자에게도 가족과 함께 하는 공동작업이란 엄두도 못낼 만큼 바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가족은 자신들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하늘마음농장'이라고 이름지었다. 하늘처럼 넉넉한 마음을 갖자는 뜻인 모양이다.

박찬득씨는 자신들을 걱정하는 도시의 가족, 친구들을 위해, 또 글쓰기가 취미인 아내를 위해 최근 농장이름의 홈페이지(http://skyheart.co.kr)를 열었다.

아름아름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많은 네티즌들이 잔잔한 시골 이야기에 감명을 받았다는 글을 연일 올리고 있고,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고 있으니 박찬득씨 가족은 시골 와서 더 출세한 셈이다.

몸빼바지가 꽤나 어울리는 배동분씨는 멀리서 온 손님인데 저녁이라도 먹고 가야 한다며 부산하게 움직이는 모양이 인정스러운 울진아줌마의 모습 그대로다.

바쁨을 핑계로 울진읍내로 돌아오던 불영계곡 길 위에서 기자는 `조금만 버리면 행복해 진다'는 박찬득씨의 말을 되뇌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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