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진 시사평론가前 국회비서관
정국진 시사평론가
前 국회비서관

울진과의 첫 만남을 기억한다. 36번 옛 국도는 영주와 봉화를 거치는 동안 이미 지쳐 있는데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긴긴 꼬부랑길에 살짝 멀미 기운이 올라오던 나를 황홀경에 빠뜨린 것은 금강송과 왕피천, 불영계곡이었다. 그리고 깊은 산을 빠져나온 끝에 마주한 망망한 양양대해 망양(望洋), 떠오른 이글이글 붉은 태양이 지평선 아래 바다파랑과 지평선 위 하늘파랑을 잡아삼켰다.

호남에서 나고 자라 성인이 된 이후로 수도권에서만 생활하던 나에게 이처럼 울진은 참 먼 땅이었지만,

곳곳마다 빽빽이(울·蔚) 진주(진·珍)가 들어차 있는 곳이었다. 교통이 불편해 쉽사리 갈 엄두가 나지 않지만, 흔해 빠진 곳에서는 얻을 수 없는 남다른 호연지기가 나를 그립게 하곤 했다. 때마다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 가 보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나마 올 초 36번 국도가 고속·직선화되어 새로 개통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동해선 철로 공사도 착착 진행돼 개통을 앞두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울진은 ‘육지의 섬’이다. 교통 덕후(준 전문가 수준의 취미인)들은 전국에서 가장 교통이 불편한 곳으로 경북 북부의 영양과 울진을 손꼽는다. 그나마 영양은 이름을 딴 고속도로 나들목이 동청송 지역에 있지만(동청송영양IC), 울진은 가장 가까운 나들목까지 가는데도 하세월이다. 울진군청을 기준으로 북으로는 55km 거리의 강원 삼척 근덕IC가 그나마 가장 가깝고, 남으로는 그보다도 더 긴 74km를 달려야 영덕IC를 만난다. 수도권으로 가기에 가장 가까운 나들목은 영주의 풍기IC로 무려 96km를 내달려야 한다. 이런 여건은 사실상 전국에서 울진이 유일하다. 그나마 강원 남부의 태백 정도가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질 만 하다.

국토교통부의 국가간선도로망계획에는 한반도의 동서를 잇는 9개 축의 고속도로가 있다. 그 중 동서5축 고속도로는 울진에서 시작해 봉화와 울진을 넘어 도청신도시와 문경을 거쳐 서해안의 보령까지 이어진다. 문제는 인구가 상대적으로 밀집한 서쪽은 차근차근 개통 구간이 늘어나는데, 경북 북부 구간은 개통될 기약조차 없다. 지방소멸 수준의 인구 감소 속에서 예비타당성 조사(B/C)를 통과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우며, 예타 면제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그래서 제안하는 것은 비슷한 여건을 가진 강원 남부와 경북 북부가 상생하는 방안이다. 평택에서 시작한 동서6축 고속도로는 충북 제천에서 끊겨 있는데 다행히 올 8월 예타를 통과해 강원 영월까지는 연장된다는 소식이다(2031년 연장완료). 문제는 태백을 거쳐 삼척까지의 구간은 그나마 수요가 있는 지역마저도 비껴나가는 인구 저밀도 구간인데다, 공사 난코스 지역이라 예타 통과 가능성이 역시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다.

따라서 2018년 태백상공회의소는 동서6축 고속도로 노선변경안을 정부에 건의한 바 있다. 이는 기존 노선에서 좀 더 남하하여 태백 시내와 가까워진다. 그 종점은 남부 삼척시의 원덕읍 호산리로 향한다. 원래 계획안대로라면 북부 삼척시가 종점이 되는데, 여기는 이미 고속도로가 연결돼 있어 필요성이 다급하지 않은 곳이다.

이 변경안에 따르면 고속도로는 강원-경북 도계(道界)와 바짝 붙어 가게 된다. 이 경우 가칭 ‘울진원덕IC’는 울진 최북단 북면 나곡리에서는 불과 5km, 울진군청에서는 24km면 접근할 수 있다. 울진 남부 지역도 굳이 영덕까지 남행한 후에야 수도권으로 북행할 수 있는 번거로움과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봉화군 북부 지역인 춘양면, 석포면 등도 수혜를 보게 된다.

기약 없을 동서5축(영주~봉화~울진), 동서6축(영월~태백 북부~삼척 북부) 고속도로를 마냥 기다린다고 답이 나오진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이 둘 기능 모두를 어느 정도 충족할 수 있는 절충안, ‘동서5.5축 고속도로’를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 도로는 현재 확정된 남영월IC 이후 상동IC, 태백석포IC, 울진원덕IC(이상 가칭)로 이어질 것이다. 종점인 울진원덕IC 기준으로 서울로의 이동시간이 지금보다 1시간 이상 단축될 전망이다.

이제 남은 것은 경북이 강원과 함께 협력에 나서는 것이다. 오랫동안 SOC사업에서 소외된 경북과 강원은 교통망 확충을 위한 공조의 역사를 10여년간 다져 왔다. 두 광역지자체의 공조 덕에 동해선 철로의 완공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었다. 다만 그 성과는 그간 남북 축에만 한정됐다.

서울 및 수도권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은 동서 축 그리고 고속도로 교통으로, 경북 북부와 강원 남부가 공히 오랫동안 목말라 있던 교통 인프라였다. 경북 북부와 강원 남부를 찾는 타지인들의 갈망도 제법 되리라. 타지인임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동서5.5축 고속도로’와 ‘울진원덕IC’는 울진과 타지를 더욱 가깝게 이어줌으로써 함께 살아가는 우리 대한민국 공동체를 더욱 끈끈하고 튼튼하게 만들어주리란 기대감 때문이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울진과 경북 북부를 더 자주 찾아가고픈 착한 욕심, 가져보면 안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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