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출신 프로축구선수 1호, 진주중 김창원 감독

울진 출신으로 프로축구 성남 일화에서 활약하다가 은퇴한 후 현재 경남 진주중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제2의 축구인생을 살고 있는 김창원(32세) 감독을 현지에서 만나보았다.

30여명의 축구부 선수들은 전지훈련을 온 00중 선수들과 열띤 골경쟁을 벌이고 있었고, 김감독은 목청이 터져라 “창수 오른쪽으로 가고”, “민철이 자리 지켜야지” 등 작전지시에 열중하고 있었다.

꿈나무들의 땀냄새가 풀풀 나는 이 곳이 바로 2년차 새내기감독 김창원이 제2의 인생을 엮어가고 있는 현장인 것이다.

김감독은 울진초등학교에서 처음 축구화를 신은 후 울진중학교 2학년 시절 강릉시 명륜중학교로 축구 유학을 떠나면서 본격적인 축구인생을 시작했다.

강릉 제일고(전신 강릉상고)를 거쳐 국민대학교에 진학한 김감독은 눈부신 활약을 보이며, 1993년 국가대표 상비군에 선발됐다.

김감독은 1993년 한 해 동안 중국 상해에서 열린 제1회 동아시아게임과 미국 버펄로에서 열린 제17회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출전해 특유의 체력과 스피드로 맹활약을 펼치며 축구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국민대를 졸업하던 1994년 2순위 1번으로 프로축구 성남 일화팀의 유니폼을 입게 된 김감독은 8년간의 프로생활을 통해 최강의 수비수로 맹위를 떨쳤다.

“처음 프로생활을 시작하던 때 울진과 가까운 강원도 동해에서 경기를 펼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많은 울진 선후배들이 찾아와 ‘김창원 파이팅’을 외쳐주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눈물이 핑 돌더라구요.”

잘나가던 프로선수 김창원은 2000년 꿈에도 그리던 월드컵 대표 선발을 앞두고 고질적이던 무릎부상이 다시 도져 끝내 꿈을 접게 된다.

프로선수의 최대의 적인 부상으로 인해 선수생활 내내 온갖 좌절을 격어야 했던 김감독. 하지만 그는 그 때 마다 불굴의 의지로 재활훈련에 몰두해 빠른 회복으로 좌절을 극복한 선수로도 유명하다.

평소 운동벌레로 소문난 김감독이 계속적인 웨이트트레이닝으로 키워 온 체력은 자타가 공인하는 것으로 프로 세계에서도 “자고 일어나면 충전되는 건전지처럼 체력이 다시 회복돼 있는 괴물”로 통할 정도였다.

수비수로는 보기 드문 빠른 발과 뛰어난 순발력으로 공격 가담율이 높아 한 때 일본행이 거론될 정도로 엄청난 스테미너의 소유자였던 김감독이었으나 2001년 결국 아킬레스건 부상이라는 치명상으로 인해 은퇴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은퇴 후 김감독은 한 때 방황하며 “다시는 축구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게 되지만, 그의 재능을 아까워 한 대학선배의 적극적인 권유로 2002년 5월 지금의 진주중과 인연을 맺게된다.

“정말 축구가 싫었습니다. 늘 따라다니는 부상은 저와 가족들을 괴롭혔고, 팀에도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했지요. 축구를 떠나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그래서 진주중학교 감독이 되었습니다”

김감독이 부임하기 전 경남에서도 늘 하위를 기록하던 진주중학교 축구팀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김감독은 먼저 자신이 그러했듯 체력훈련에 선수들을 내몰았다고 한다. 그리고 게임보다는 기본기 훈련에 매진한 결과 아이들은 차츰 볼 컨트롤과 승부에 대한 근성이 눈에 띄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진주중은 그 해 부산에서 열린 청룡기대회 4강 진출을 신호탄으로 2002년 9월 제38회 추계연맹전에서도 4강에 진출하는 맹위를 떨치게 된다.

진주중학교로서는 전에 없던 눈부신 성적이며, 김감독으로서는 성공적인 제2의 축구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특히 김감독의 애제자인 박웅희군은 유소년 국가대표에 선발되기도 해 동료 선수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있는데, 김감독의 꿈은 2003년도 전국대회 우승이라고 한다.

“현역 시절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새로 시작한 지도자의 길을 통해 반드시 최고의 자리에 서고 싶어요. 10년 후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반드시 월드컵 무대를 밟아보는 것이 지금의 꿈입니다.”

김감독은 자신이 처음 운동화를 신었던 울진후배들에 대한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울진축구의 발전을 위해서는 많은 대회가 유치되어야 하는데 시설이 열악한 것이 가장 안타깝다”는 김감독은 “많은 축구동호인들과 뜻있는 분들의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자신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다각도로 연구해 볼 것이라고 말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선수들을 향해 뛰어가는 김감독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화려한 월드컵 무대에 우뚝 서 국가대표 선수들을 호령하는 모습을 꼭 볼 수 있기를, 그래서 10년 후 다시 한번 울진출신 국가대표 감독과 인터뷰해 보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김감독은 울진읍 연지리 현내마을 출신으로 어머니 이순자씨와 형 창준, 창근씨가 지금도 본가에 살고 있다. 부인 이상미씨 사이에 7살박이 아들 세화군을 두고 있는 김감독의 취미는 컴퓨터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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