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장마가 막 시작되기전 어느날의 일이다.

하늘은 낮게 드리웠고, 바람도 싸아 했다. 평소 친분이 있는 C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울진근교에 있는 어느곳을 걷고 있었다. 발아래 부딪히는 파도소리와 늠름한 바위와 짙푸른 해송들, 산허리에서부터 살랑대는 풀섶의 은밀한 사각거림이 일상의 분주함에 무기력해 있던 우리를 황홀케 했다.

그때쯤이었다. 비탈진 산책로 저 아래에서 무슨 긴 여운 같은게 들리는 듯 했다.

바람에, 반대쪽 대숲에서 저희들끼리 부딪히며 내는 소리겠거니 했다. 그러다 얼마를 지나서였을까 사람의 음성 같은게 분명히 들렸다. 우리는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가까워 지기를 기다렸다. 산책로를 따라 누군가 걸어 올라 오면서 내는 소리임이 분명했다. 크게 울고 있었고, 젊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곧이어 빨간 바탕에 까만 장미가 그려진 손수건과 열쇠 꾸러미가 보이는가 싶더니 문제의 그 소리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의아한 눈길을 보내고 있는 우리가 있음을 눈치챘음에도 불구하고 남산만한 배를 소리내어 울기만 했다. 놀란 우리는 서둘러 달려가 그녀를 달래기 시작했다.

진통은 없었지만 뱃속의 아이는 엄마의 울음에 놀란 듯 단단히 뭉쳐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행히 그녀의 집이 근처에 있어 안정도 시킬겸 함께 가기로 했다.

산둥성이에 자리한 사원주택 같은 곳이었고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한 집은 넓고 정갈했다. 우리는 그녀의 울음이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새댁, 아니 왜 이렇게 울고 다니는 거예요? 뱃속에 아기를 생각해야 되지 않겠어요”

퉁퉁부은 얼굴의 그녀는 그때서야 입을 열었다. “너무 외로워 힘들어서 그래요, 먼곳에서 이곳 울진까지 왔는데 신랑은 매일 늦고,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몸은 무겁고 매일 보이는 것은 바다뿐이고...” 단지 외롭다는 그 이유? 세상에, 우리는 뜨악했다.

생활의 무게가 그날의 절절한 화두였던 마흔 모퉁이의 우리는 서로의 표정을 그녀에게 들킬까봐 눈길을 주고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해 준 것 같다.

이렇게 쾌적하게 생활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음과 울진에서만 아니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신선한 바람과 분명 성실하게 일하며 미래를 설계할 것 같은 보지 못한 신랑과 줄지어 가는 고깃배를 바라볼 수 있는 특권과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사귈수 있는 설레임가 잉태한 생명에 대한 기쁨과 희열... 그리고 비상시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읍내병원 소개까지

전화번호를 남긴 것 같은데 그 뒤로 그녀에게서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없었을 만큼 혼자 잘 견뎌내고 있는지 꾸물꾸물 장마가 밀려올때면 그녀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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