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핵폐기장 반대 투쟁 - 성과와 과제
주민여론 찬,반 양분 - 주민통합 장치 마련 시급
유치위가 내건 미래상 대치할 청사진 마련해야


올초부터 울진을 뜨겁게 달구었던 핵폐기장문제가 지난 15일부로 일단락됐다.

이 날은 정부가 제시한 “양성자가속기 연계 핵폐기장 자율유치 시한”의 마감일이었다. 전북 부안군은 마감일 하루 전인 14일 전국 지자체 가운데 유일하게 자율유치신청서를 산자부에 접수시켰고, 이에 따라 핵폐기장은 부안군 위도에 연착륙할 전망이다.

울진이 핵폐기장 문제로 홍역을 치룬 것은 이번이 세 번째로, 지난 1992년과 94년 정부가 기성면 일대를 핵폐기장후보로 선언한데 맞서 거센 투쟁을 전개한바 있다.

그로부터 10년 세월을 훌쩍 건너와 올해 재발된 핵폐기장 문제는 지난 두 차례의 “고향지키기” 차원의 반대운동과는 다소 다른 양상으로 진행됐다.

정부는 3천억원의 지자체 직접 지원금, 양성자가속기사업과 한수원 본사 이전 등을 포함한 총 2조원의 당근을 내놓았다. 한수원(주)은 유치위에 매달 수천만원의 홍보자금을 공식적으로 지원했고(울진은 두 차례), 이에 힘입은 유치위는 나름대로의 지역개발 논리로 무조건적 반대론에 맞섰다.

개발론은 언제나 적극적인 모습을 띠며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사로잡지만, 고향지키기니 환경지키기 같은 논리는 늘 추상적이기 마련. 그래서 핵투위는 정부가 이미 수차례 울진을 핵폐기장 후보지에서 제외시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과 이미 울진은 세계 최대의 핵단지화가 예고돼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홍보했다.

특히 원전에 의한 지역이미지 추락과 그로 인한 관광산업의 발전 저해, 농수산물 판매 애로 등을 제기했으며, 핵폐기장의 안정성 문제와 양성자가속기가 핵재처리시설로 사용될 수 있다는 의혹제기도 빼놓지 않았다.

울진이 핵폐기장 후보지로 공식 발표된 것은 지난 2월4일. 정부와 한수원은 동명기술공단(주)이 용역한 후보지도출보고서를 바탕으로 울진과 영덕, 영광, 고창을 후보지로 발표했다. 하지만 2002년 12월 일부 언론에서 울진이 핵폐기장 후보지에 포함됐다는 보도가 흘러나왔고 사실상 핵폐기장 반대투쟁은 이미 이 때부터 시작됐다.

반대운동의 선봉에는 울진군의회가 있었다. 군의회는 12월17일 당시 신국환 산자부장관을 면담하고 “곧 있을 정부 발표 시 울진을 제외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는 한편 “한수원 최양우사장 해임 건의안”을 전달했다.

이어 1월3일에는 국회의원, 도의원, 군수, 군의회 등이 연대해 핵폐기장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1월9일 관내 109개 관변·자생단체 대표들은 핵폐기장과 원전추가건설을 반대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원전반대범대위를 결성, 범군민적 반대운동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범대위는 관내 전지역 현수막 개첨, 반대서명운동 등을 의욕적으로 전개하면서, 대통령직인수위와 산자부를 찾아 항의집회를 여는 등 대외투쟁활동을 강화해 나갔다.

하지만 2월4일 결국 우려한대로 울진이 핵폐기장 후보지로 발표됐고, 핵투위는 정부에 대한 전면투쟁을 선언한 후 기존 “원전반대범대위”를 “핵폐기장반대투쟁위원회(핵투위)”로 개칭했다.

핵투위는 2월14일 울진군청 앞 광장에서 3천여명의 주민이 운집한 가운데 1차 궐기대회를 개최하고, 군의원 전원이 삭발한 후 거리행진을 하는 등 반대분위기를 띄웠고, 3월19일 북면사무소 앞에서 열린 2차 궐기대회를 통해 7번국도를 완전 점거하는 등 수위를 높여갔다.

지역 여론을 반대분위로 환기시킴과 동시에 울진군민의 반대의지를 확고히 밝히려는 이와 같은 시위는 3월27일 서울마로니에 공원 4개 후보지역 연합시위까지 이어졌다.

그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유치위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4월10일. 유치위는 이날 울진읍 장수뷔페에서 핵투위의 방해를 받는 가운데서 결성식을 강행하고, 핵폐기장 유치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선언하고 나섰다.

4월17일 정부가 양성자가속기를 핵폐기장 유치지역에 끼워 주는 등 획기적인 지역개발사업을 시행하겠다는 발표를 하자 유치위의 활동에 탄력이 붙기 시작하더니 28일에는 “울진을 사랑하는 모임회(울사모)”가 결성돼 유치위 측면조직으로 활동을 게시했다.

유치위는 6월20일 근남면주민토론회를 거친 후 산자부에 주민설명회를 실시해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고 급기야 자율유치 시한을 10일 앞둔 7월5일 장수뷔페에서 산자부 김신종 에너지심의관이 참석하는 설명회를 개최했다.

이에 자극받은 핵투위는 역으로 중앙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투쟁강도를 높여 나갔다.

핵투위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고위권자를 연이어 면담하는가 하면 경북도지부를 점거해 철야시위를 강행했다.

이러한 대외투쟁의 과정 속에서 황성섭 핵투위상임위원장(4월19일)과 김용수군수(6월4일)는 연이어 윤진식장관으로부터 “주민이 원하지 않는다면 울진은 제외하겠다”는 발언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윤장관의 발언은 7월15일이 시한인 자율유치기간동안 울진이 신청하지 않을 경우 재론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결국 유치위의 끈질긴 유치노력에도 불구하고 유치신청권한을 가진 김용수군수와 견재기관인 울진군의회는 15일 마감시한까지 자율유치를 거부했다. 마감 하루 전인 14일 전국에서 유일하게 부안군은 핵폐기장을 유치하겠다며 신청서를 제출했고, 이제 울진의 뜨거운 감자였던 핵폐기장 문제는 서해바다로 넘어가게 됐다.

지역민간의 심각한 갈등양상을 가져오게 했던 핵폐기장 문제가 일단락된 가운데 지역의 가장 큰 숙제는 민심의 화합.

김용수군수는 “지역민의 화합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다”고 밝혔고, 정일순군의장도 “주민 모두가 힘을 합치는 통합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하고 있다.

비록 핵폐기장과 관련한 견해가 달랐을 뿐 모두가 울진의 미래를 생각한 결과였다는 것이 대다수 주민들의 생각이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핵폐기장 문제에 우리 모두가 피해자라는 마음을 갖는다면 양분된 지역민심의 통합도 그리 어려워 보이지만은 않다.

단, 수차례 핵폐기장을 울진에 건설하지 않겠다던 정부와 한수원이 또다시 울진을 후보지로 지정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라는 게 주민들의 중론이다.

대다수 주민들은 이제 울진에 건설돼 운영중인 원전의 안정적 운영을 위한 감시노력과 함께 핵폐기장에 버금가는 지역경제 기여효과를 얻어내는 것에 주민들의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함께 5,6호기 건설공사가 끝나는 올해 말 촉발이 예견되는 기존 원전 관계업체 근로자들의 실직사태에 대한 대책마련과 유치위가 내걸었던 장미빛 미래상을 대치할 수 있는 울진 미래청사진 작성도 숙제로 남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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