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든, 어디에서든 새 살림을 시작하는 평범한 부부라면 몇 번의 이사를 경험하는 것이 보통이리라.

우리 가족도 예외는 아니어서 B시에서 살 때 <4호연립>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짐작컨대 그 곳은 족히 몇 십 년은 되었음직한 낡고 낮은 연회색 이층건물로서 사람이 지나다닐수 있는 길을 가운데 하고 마주 서 있는 곳이었다.

대로의 바로 뒤편 이었지만 앞 건물의 웅장함과 요란스러움에 빠듯한 자금에 그나마 독채를 얻을 수 있는 곳이 그 곳 뿐이었는데, 비호처럼 빠르고 분잡한 아이들을 눈치보지 않고 키울수 있을 것 같아 우리에게는 오히려 행운으로 여겨졌다.

짐을 풀고 주위를 찬찬히 살펴보니 날이 새기가 바쁘게 길가에 펼쳐놓은 평상 위로 할머니들이 하얗게 모여 드시는게 아닌가.

날이 궂지 않으면 항상 그랬다.

젊은 사람들이나 아이들이 그곳을 지날 땐 꼭 인사를 해야 했고, 가끔 이것저것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으시기도 했다. 심심찮게 집안의 다툼이나 이웃의 큰소리가 여과없이 고스란히 전해지기도해 문제의 당사자를 만나면 민망스러워 쓴웃음을 지었다.

오래된 목조건물의 삐걱거림과 쿵쿵대는 소리를 죄송스러워하면 아래층 아저씨는 “아이들이 다 그렇죠 뭐”하며 도리어 미안해 하셨다.

신기하게도 그곳에 피어나는 줄장미는 더붉고 탐스러웠다.

아이들도 자유롭게 뛰어다녔다.

그 속에 「별님」이라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어떤 이유로 버려져 있는 아이를 혼자 사시는 성치 못한 할머니가 거두워 키운 모양이었다.

별님이는 아이들과 섞여서 밥을 같이 먹고, 냇가에도 함께 가고 유치원도 어울려 다녔다.

엄마들은 아이 옷을 살 때 가끔 별님이의 옷을 함께 사 입혀주기도 했다.

얼마전 먼 길을 달려 그 곳에 가볼수 있었다.

그사람 그대로, 그 장미꽃 그대로 피어 있었고 그리고 또 다른 별님이가 뛰어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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