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지구상의 생물중 유일하게 언어를 구사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인간을 규정하는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가 언어라 하겠다. 그런데 그 언어는 그냥 의사소통의 도구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의식을 지배하고 더 나아가 그 사람의 삶과 문화를 지배한다.

벌써 오래된 일이지만 서울서 학교 다닐 때 언젠가 추석이 되어 울진행 버스를 타고 올 때의 일이 기억난다. 버스는 만원이어서 일부는 앉고 일부는 서고, 비좁은 버스 속에서 좀 피곤한 귀향길이었다. 그래도 고향 간다는 마음에 모두 조금씩 들떠 있어서 저마다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나는 뒷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스무살 전후의 아가씨 몇 명이 서울말과 울진말을 번갈아 흉내내면서 떠들었다. 하나가 빠른 서울말투로 “나 서울서 왔어요.” 라고 하자, 또 하나가 말을 받아서 “어머니 지랑 좀 주세요.” 하면서 깔깔 웃다가, 또 하나가 울진말을 흉내낸다. 모처럼 명절에 고향 와서 서울말을 흉내내는 딸에게 어머니가 멀리서 “영자야.” 하고 소리치니 딸 대답 왈 울진말투로 길게 뽑으며 “모오로오.” 하고 대답한다.

차안은 그 소리에 모두 배를 쥐고 웃었다. 그래서 답답하고 불편한 귀향길의 피곤함도 금새 잊고 친구처럼 정다운 낯빛으로 깔깔대며 즐겁게 올 수 있었다. 요즈음은 이런 울진 특유의 말들이 자꾸 사라져 가고 있지만 언제나 정답고 그리운 고향말이다.

울진 사람들은 특유의 사투리를 사용하고 그것이 우리 울진 사람들의 의식과 문화의 색깔을 드러내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울진 사람들의 말은 좀 투박하고 급한 편이다. 그래서 성격도 좀 무뚝뚝하고 급하게 보이는 듯하다. 지적인 훈련을 좀 많이 받은 사람들도 그것을 못 고쳐서 오해받는 경우를 가끔 볼 때가 있다. 속 마음은 깊고 다정한데도 좀 거칠고 무뚝뚝하게 보이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거나 우리 울진 고향말은 내가 태어나고 자라서 수십 년 간 쓰고 있는 정다운 나의 말이다. 어디 가다가 울진 사람 말투가 들리면 되돌아보고 고향을 물어 보기도 한다.

장도준 교수 : 죽변면 화성리 출신 / 연세대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대구가톨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현재),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교환교수 / <저서> 「정지용시 연구」「현대시론」「우리 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한국 현대시의 전통과 새로움」「한국 현대시 교육론」이외에 30여편의 논문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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