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글을 쓸 수 없냐는 연락을 받았다. 멀리 떨어져 있는 동향(同鄕)의 사람을 잊지 않고 연락을 주니 반갑기 그지 없지만, 이렇게 귀한 고향의 대표적 소식지를 접하고자 하니 두려움이 앞선다. 자연과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남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잠시 생각하다 역시 지질학을 30여 년간 공부해왔으니 그것을 근간으로 둘 수밖에 없지 않을까.

드물지 않게 지질조사(地質調査)를 위하여 필드(Field)에 간다. 요즘 이야기되는 골프를 치기 위하여 필드에 가는 것이 아니라 지질조사를 위하여 야외(野外)에 가는 것을 우리는 “필드에 간다“ 라고 우리들만의 대화를 한다.

오래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으로써 그 지역이 적합한가를 조사하기 위하여 동해안, 서해안, 남해안, 무인도(無人島)를 포함하여 한반도 여기저기 구석구석을 대상으로 필드에 다녔다. 다른 조건들도 많지만 지질학적인 평가요소도 부지의 적합성을 평가하는데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원자력발전소 부지의 지진 안전성 즉, 활성단층(活性斷層) 연구를 위하여 필드에 다닌다. 필드에 갈 때에는 햇빛을 가릴만한 허름한 모자와 든든한 등산화에 작업복을 입고 간다. 다만 일반 등산가와의 차이점은 한손에 Rock Hammer(돌 망치)를 들고, 다른 한손에는 야외에서 지질조사를 통하여 관찰된 내용을 기재할만한 필드노트(野帳) 그리고 지도를 들고 다닌다는 점이다.

지난주에도 필드에 다녀왔다. 활성단층을 조사하기 위한 것이다. 활성단층을 조사하는 목적은 그동안 찾지 못했던 새로운 활성단층이 또 다시 없을까 확인하고 또한 그 단층으로부터 발생될 수 있는 지진(地震)의 크기가 얼마이며, 언제 다시 발생할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전문가가 필드에서 한번 휙 둘러보면 그 답이 쉽게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가 필드에서 활성단층을 찾는다는 것은 바닷가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흡사하다고 생각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또한 그 단층이 확인되더라도 그곳을 몇 번이나 가서 다시 관찰하고, 시료를 채취하여 분석하고, 또한 지질 전문가들이 여럿이 모여서 끊임없이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그런데 지질학의 연구란 수십만년 혹은 수천만년 또는 그 이상 수억년의 시간적 영역을 가지는 사건들을 해독(解讀)하는 것이니 그 답을 얻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요즘과 같이 중요한 국가 시설물의 부지 적합성과 연관지어 그 답을 요청할 때에는 곤란에 처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전문적인 내용에 관해서는 그냥 단편적인 사실 만으로 주장할 것이 아니라 관련 전문가들 간에 충분한 연구와 토의를 거쳐 가장 합당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도 중요한 몫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이해 당사자 모두에게 요구되는 것이기도 하며, 또한 전문가들도 그들의 이성적인 철학을 바탕에 두고 전문가로써의 의견을 이야기해야만 할 것이다.


장천중은 경북대학교 대학원 지질학과를 졸업했다(이학박사).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1987년부터 10여년간 방사성폐기물 처분연구를 하였으며, 1997년부터 지금까지 전력연구원에서 “원전부지 지진 안전성 평가 연구(활성단층 연구)”를 주로 하고 있다. 현재 대한지질학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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