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살면서 얼마나 정신 없이 살았는가를 새삼스레 생각해 보았다. 아침에 죽지 못해 일어나(늘 늦게 잠을 자니 당연한 현상!) 남편과 아이들을 보내고 원고보는 일을 하다, 직장인들 Report채점하다, 과외있는 날은 또 그리 정신없이 보내다보면 아이들이 오고 학원에 가방쥐어 주며 뒤통수에 대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얘기 되풀이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정석인줄 알고 그러려니 했다. 그러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 아파트 베란다에 서면 유리에 비친 내 헝클어진 모습을 보며 얼마나 많은 날을 이리 정신을 다 빼고 살아야 하나 하며 제정신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그러다 자연으로 돌아왔고, 당연히 이곳에서는 `느림의 예찬'을 하며 살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마음을 조금만 붙잡고 있지 못하면 일에 쫓겨다니기는 마찬가지다. 가공일을 함께 한다고 겨우내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았다. 함께 유기농하는 6가구와 공동으로 힘과 마음을 모아 재미있게 하는 일이 하나, 둘 늘어나다 보니 시간이 도시와 마찬가지로 일을 기다리는 꼴이 되어가고 있다.
뒤를 돌아보고 싶다. 앞만 보기보다는 뒤도 보고 옆도 보고 말이다.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멍하니 산골을 둘러보고, 요즘은 얌전한 까마귀가 보이지 않는 날엔 혹여 이웃에서 미운털이 박혀 약먹고 어디서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품고 싶다.
이제 된장과 고추장 담는 일이 거의 끝나가니 마음을 열어두고 길을 떠나고 싶다. 그런 생각에 산골아이들과 며칠 여행을 간다. 귀농하면서 아이들과 긴 여행을 다니기로 다짐한 바도 있고, 멍하게 사는 날을 더 많이 만들기 위해서도 기인 여행을 떠나고 싶다.
산골친구들을 데리고 가지 못해 그들에게는 달리 말 않고 다녀올 생각이다. 다람쥐, 자주 밤에 우릴 놀라게 하는 너구리 형제들, 미운 까마귀 부부, 그 옆에 꼭 따라다니는 까치들에게 돌아올 때는 선물이라도 하나씩 안겨주며 말 않고 가야만 했던 심정을 이해해달라고 아부를 해야겠다.
오늘은 밤에라도 이리 멍할 수 있어 그저 좋기만 하다. 멍하다는 것은 나를 들여다 본다는 것, 멍하다는 것은 나의 뒤를 돌아다 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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