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기차 안이다. 서울 다녀오는 길이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친정 엄마와 함께 산골로 가는 중이다. 마주 앉은 엄마의 얼굴에는 거미줄처럼 삶의 편린들이 얽혀있다. 이럴 때의 감정은 다음 서울 올라올 때까지 그 옛날 기계충 흔적처럼 가슴에 여기 저기 아쉬움으로 자리 잡는다.

언제면 그 흔적이 지워질까? 그 흔적의 근원은 많은 부분 나의 엄마에게 있다. 내게 있어 엄마는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어디서부터 얘기를 할까.


엄마는 충청도 천안의 종가집 맏며느리셨다. 아버지는 공무원이셨기에 천석이나 되는 농사는 시부모와 엄마의 몫이었다. 농사가 많아 머슴이 서넛 되어도 한 번에 품을 사면 이 삼십 명씩 살 정도. 그리 농사가 많으니 하루 종일 엄마가 하는 일이란 삼시 세 끼와 두 번의 참을 그 먼 논, 밭길을 따라 해 나르셨던 일.

그처럼 엄마의 삶은 머리 위의 밥광주리 만큼이나 무거웠다.
거기에 껌처럼 등에 들러붙은 아이의 두 다리는 왜 그리 사방으로 흔들리는지. 그 흔들림의 강도는 엄마의 걸음을 더디게 했으리. 그럴 때마다 한 손에 곡예하듯 거머쥔 막걸리 주전자의 출렁임처럼 다음 세대에 대한 희망과 각오는 더욱 너울거렸을 것이다.

밥광주리를 내리비치는 햇살에 대고 옹알이처럼 중얼거리신 것이 아이들에게 만큼은 이런 농사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거였으리. 그 확고한 의지는 아버지를 충동질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밤마다 종조목을 대듯 들이댄 이유는 단 하나. 내 아이들만큼은 이 시골에서 키워 농사짓는 사람에게 시집보내지 않겠다는 것. 씨아리도 안먹히는 얘기에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아버지는 돌아누웠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의 그 한 가지 의지는 어떤 이유도 뛰어넘는 태풍의 눈보다 더 큰 위력을 가진 것이었다.

결국 남편, 시부모님에게 반강제로 허락을 얻어내어 여섯이나 되는 아이들을 앞세우고 아버지와 서울행을 감행하셨다. 시골의 전답은 손도 대지 않고 맨손으로 시작한 서울살이는 한겨울 문고리에 손이 쩍쩍 늘어붙듯 가슴을 쥐어흔드는 세월이었으리...

그 힘든 서울살이에도 오직 한 가지의 철학은 "자식에게 돈을 물려주면 망할 수 있어도, 머리에 넣어주는 것은 망할 일이 없다''는 것. 시골에서야 몸은 그처럼 고되었지만, 모든 것이 풍족했지만, 몸뚱아리만 달랑 올라온 서울에서의 알량한 수입의 우선 순위는 단연 교육비...
많이 가르쳐야 자식의 장래가 희망적이라는 개똥철학으로 서울살이의 모든 물질적, 정신적 고통을 감내하셨던 분.

그리그리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서울에서 잘 가르쳐 엄마의 소원대로 서울에 말뚝박게 하셨다. 그리하여 모든 임무를 완수하셨다고 생각하셨던 칠순의 엄마에게 막내는 뒤로 자빠질 소리를 한다.

"귀농''... 이게 웬말인가?
서울에 말뚝박은 줄 알았던 막내가 그것도 산골 오지로 농사짓기 위해 말뚝을 옮겨 박겠다고? 대학원까지 갈쳐 놓았더니 시골가서 농사짓겠다는 막내 딸년과 사위의 말에 똥끝이 타들어갈 지경이지만 그 많은 자식과의 고된 서울살이 경력으로 잘 버텨내신다.
그러나 결국 우린 산골로 둥지를 옮겨 앉았고, 엄마의 가슴 속엔 마른 버짐피듯 슬픈 응어리가 군데군데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제 귀농 4년 째가 되어가는 지금 그 엄마와 함께 나란히 산골로 향하고 있는 기차 안. 서울로 볼 일 보러온 딸년이 하도 같이 나서자는 말에 따라는 나섰지만, 엄만 지금 무슨 생각으로 가슴의 응어리를 단속하고 계신지. 나의 그 궁금증만큼 입을 굳게 다물고 계신다.
어찌보면 아이들과 재미있게 사는 것도 같고, 어찌보면 펜을 잡았던 손에 호미를 거머쥐고 뙤약볕에 씨름하는 막내딸이 야속해 가슴을 치고 싶고 그러실 것이다.


창밖을 본다. 밤기차이니 어둠만 눈에 들어올 뿐이지만 서울에서 멀리 떠나왔을 것이다. 내 마음에도 어느새 산골의 저녁이내가 끼어들고 있으니 말이다. 차창에 대고 나만이 들을 수 있는 옹알이를 해본다.

엄마! 사람은 말이야. 어디에 있든,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색의 옷을 걸치고 나머지 삶을 마저 가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야. 내 마음에 어떤 꿈을 안고 사는지, 초저녁 뜸부기 울음소리처럼 넉넉한 울림을 안고 사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엄마! 이제 그 응어리를 이 기차에 두고 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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