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1

함께 나눈 아픔은 질긴 평화의 힘으로 다시 모여… 
 
 
송화가루가 달큰한 향내를 풀풀 날리며 봄날의 끝을 말아올리는 동해 바닷가를 낀 자그마한 산간농촌마을에서는 한 해 농사일 준비로 부산합니다.

때맞춰 모자리도 내야하고 그 전에 논둑 가래질부터 후딱 해치운 뒤 ‘포강’(필자가 사는 울진군 북면 신화리 ‘새마’마을에서는 예부터 시냇물을 농업용수로 사용하지 않고 논배미 위쪽에 큰 웅덩이를 파서 물을 저장하여 사용했지요. 대부분 다락논이기 때문이지요 이를 ‘포강’이라 부르지요) 손질은 진작 마쳤지요.

   
<남효선기자 / 무엇이 이토록 질긴 생을 송두리째 파 가는지, 무엇이 이토록 순한 농군들의 흙을 깔아뭉개는지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때맞춰 심어야할 모자리며 고추모종 생각하면 한걸음도 못 떠나는 심정 헤아려주시기만 그저 바랄뿐이지요.>
농군들이 무릎까지 올라오는 긴 장화를 신고 경운기를 탈탈거리며 마을 앞길을 지나가면 그제서야 새벽이 후딱 창을 열고 쏴한 입김을 내뿜지요.

여전히 이 곳에서는 ‘동네 모자리’를 하지요. 오랜 세월 우리의 어머니의 어머니들이 노동의 고단함과 살아남기의 간난을 서로 보듬고 나누던 ‘두레’의 협업노동 관행이 이어져 오고 있는 셈이지요.

동해 변방의 산간농촌 마을 순한 농군들이 한 해 농사를 위해 굵은 땀방울을 훔치고 있을 때 우리 강산 또 한켠에서는 수 백년을 순하고 정직한 흙을 밟고 흙을 북돋고 흙을 다독거리며 생의 질긴 강줄기를 이어 온 순하디 순한 농군들이 흙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군홧발과 방패에 맞서 피흘리는 소식을 듣고 그저 우두망실 주먹만 쥐었다 폈다 애꿎은 하늘만 쳐다봅니다.

무엇이 이토록 질긴 생을 송두리째 파 가는지, 무엇이 이토록 순한 농군들의 흙을 깔아뭉개는지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때맞춰 심어야할 모자리며 고추모종 생각하면 한걸음도 못 떠나는 심정 헤아려주시기만 그저 바랄뿐이지요.

지난 해 겨울 초입에 뿌려놓은 보리는 때맞춰 불어오는 바람에 일렁거리며 하매 황금빛 낱알을 여물고 있네요.

그토록 고된 모자리를 하는 동안 채 영글지도 않은 보리를 한 줌씩 훝어 겨우내 먹다남은 감자 몇 알 으깨어 끓인 ‘짝두보리죽’을 온 가족이 빙둘러 앉아 ‘마파람에 게눈감추듯’ 겨우 풀질로 연명하던 저 아슴한 보리고개, 질긴 생명고개의 기억조차도 대추리에서는 미국의 패권주의에 뭉개지는 모습이 떠올라 도무지 이 저녁 가슴이 미어집니다.

온 겨울 내내 잘 삭은 거름 땅 위로 푸른 물결처럼 휘날리다 황금빛으로 물드는 장한 보리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대추리 땅 우리 어버이들의 순하고 맑은 눈망울이 선합니다.

동해 변방 울진서 스무엿새째 생명의 촛불 밝혀
아이들 함께 촛불켜며 생명의 찬란함 힘 키워

   
<남효선기자  / 동해 변방 울진에서도 생명의 땅 대추리를 지켜내기 위한 생명의 촛불이 스무엿새째 밝혀졌습니다.>

이 곳 동해의 변방 울진에서도 ‘평화와 생명을 지키는 사람들의 모임’인 ‘울진 평화모임’이 스무엿새 째 밤을 밝히는 촛불을 켜고, 수 천 년 뿌리내려 온 질긴 삶을 송두리째 걷어내는 미국 패권주의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어른들과 청소년들과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밤새 촛불을 밝히며 대추리의 아픔을 나누고 있습니다.

서로가 함께 나눈 아픔은 다시 질긴 평화의 힘으로 모여 미국의 패권주의를 바숴뜨릴 것입니다.

수 백년 간 울진사람들의 맑은 심성이 가득 모여 연꽃을 피우는 연호정 둘레에는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가면으로 씌워진 미국의 패권주의에 짓밟히는 생명의 땅, 대추리의 모습을 담은 영상물과 사진전이 촛불과 함께 피어납니다.

아이들은 촛불을 켜며 생명의 따뜻함과 생명의 찬란한 힘을 배웁니다.

얼굴에 여드름이 꽃망울처럼 피어나는 여중생들이, 촛불처럼 영롱한 맑은 눈의 아이들이 대추초등학교와 솔부엉이 도서관을 살리겠다며 자신의 손때가 잔뜩 묻은 책을 한아름씩 들고 나옵니다.

   

<남효선기자  >

이 모두 생명의 땅 대추리의 회생을 위한 소중한 몸짓이지요.

옛날 우리의 선조들이 외세의 침략에 맞서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이어가던 봉화불처럼 아이들의 가슴으로 지핀 촛불과 촛불이 반도의 생명과 반도의 평화를 되살리는 횃불이 될 것입니다. 울진의 아이들이 보내는 편지도 함께 동봉합니다. 힘내십시요.

남효선 기자 nulcheon@ngotimes.net

   

<남효선기자>       

◎ 엽서글 · 하나

대추리 할아버지, 할머니께
안녕하세요? 저는 울진중학교에 다니는 1학년 김수정이라고 합니다. 신문과 뉴스에서 평택 대추리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너무 안타깝고 걱정스러웠습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뒤에서 응원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무사하시길 기도하는 것밖에 없어서 너무 죄송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힘내세요! 화이팅!

◎ 엽서글 · 둘

솔직히 평택 미군기지 이전에 대해 별로 듣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연호정에서 하는 시위를 보며 사태의 심각성이 온몸에 와 닿았습니다. 사진을 보며 학교 부서지는 모습, 피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나와 같은 학생... 그리고 부모님이라는 생각에 한가지 더 깊이 생각하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정보는 그다지 많지 않지만 알 필요가 있고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등학생이라 시간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힘내세요. /울진고등학교 박종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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