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산골엔 달맞이꽃이 한창이다.

낮엔 수줍은 새색씨처럼 얼굴을 잔뜩 가리고 있다가 세상이 모두 잠든 시간만 되면 서둘러 달을 찾는다.

낯설고, 물설은 곳으로 시집와서 고되고 서글픈 시간을 보내다가 밤이 되면 달에게 제 하소연을 하는 새색씨처럼 말이다.

내가 그러니까 꽃도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른다.
낯설고, 물설은 곳으로 귀농하여 고되고 서글픈 시간을 보내다가 밤이 되면 달님과 별님을 보며 마음을 풀어내던 귀농 초 시절이 있었으니 개눈엔 똥만 보인다고 그래서 내 눈엔 그리 보이는 것이겠지...

오늘은 달 아래 얼굴을 활짝 편 달맞이꽃 옆에서 오랫동안 쥐죽은듯이 앉아 있었다.
그만의 어떤 언어로 달에게 하소연을 하는지 궁금증이 발동하여...

아니 컨닝을 하려고...
아마도 제 얼굴빛깔처럼 푸근하고 따사로운 황금언어지싶다.

얼마 전에 안도현 시인이 쓴 '100일 동안 쓴 러브레터'라는 책을 읽었다.

그 많이 박힌 문자 속에 우난히 내 눈에 꽂히던 문자는 하근찬 작가가 쓴 소설 '수난이대'의 한 대목이었다.

"진수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아버지를 돌아다 보았다.

만도는 돌아보는 아들의 얼굴을 향해 지그시 웃어 주었다. 술을 마시고 나면 이내 오줌이 마려워진다. 만도는 길가에 아무렇게나 쭈그리고 앉아서 고등어 묶음을 입에 물려고 한다.
그것을 본 진수가 "아부지, 그 고등어 이리 주이소"한다.

팔이 하나 밖에 없는 몸으로 물건을 손에 든채 소변을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아버지가 볼 일을 마칠 때까지 진수는 저만큼 떨어져 서서, 지팡이를 한쪽 손에 모아쥐고, 다른 한손으로는 고등어를 들고 있었다.

볼일을 다 본 만도는 얼른 가서 아들의 손에서 고등어를 다시 받아든다..''
일제 때, 징용가서 한쪽 팔을 잃은 아버지(박만도)와 6.25때 참전했다가 수류탄 파편에 맞아 한쪽 다리를 잃은 아들(진수) 부자에 대한 이야기다.

이 부자의 비극이 이 짧은 대목으로도 충분히 감지된다.
비극의 깊이만큼이나 온 몸이 감전될듯한 이 대목에서 난 산골아빠와 아들을 떠올렸다.
요즘은 부모가 자식에게 무조건적 물량공세를 퍼붓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세대다.
아니, 그런 생각조차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냥 당연한 현상이라 생각하고 자시고도 없겠지...
그에 발맞추어 대학졸업때까지 뼈골빠지게 벌어 자식에게 쏟아붓는 것으로 삶을 잘 살았다고 생각하는 세대가 또한 우리 세대이고 말이다.

그러다 보니 자식이 독립하면 부모를 '한 때 물량공세를 퍼부어 주었던 사람' 정도로만 여기게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부모 자식간의 끈끈함은 재롱동이 때로 한정하고마는 것이 이상스러울 것도 없는 요즘이다.
그런데 난 뭘 잘못 먹었는지 너무 엄청난 것을 바라고 있다.
산골 아빠와 산골 아이들의 관계가 어느 한 세대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오래 묵은 친구와 선배이길 원한다.

혹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끈을 잇고 있으면 독립심이 없다고 ...
그럼 그런 끈을 연결하지 않고 냉정히 제 갈길만 가는 세대라서 요즘 아이들의 독립심이 그리 다리의 기둥처럼 튼튼한가 말이다.

끈이란 간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그 많은 '인연' 중에서 '부모 자식의 연'이 된 관계로서 서로에게 거울이 되기도 하고, 상담자가 되기도 하고, 지팡이를 잠시 들어주고, 고등어 봉투를 잠시 들어주며 따뜻한 웃음을 나눌 수 있는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물건을 손에 든채 소변을 볼 수 없는 아버지를 위해, 아들은 아버지가 볼 일을 다 끝낼 때까지 제 지팡이를 한손으로 모아쥐고, 다른 한손에 고등어 봉투를 들고 있는 관계...
그들의 눈빛은 늘 따사로울 것같다.

요즘은 성공한 삶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잣대가 자식이 어느 대학에 들어갔느냐에 있단다.
그래서 동창회에 가면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뻐기고 나왔던 동창이라도 자식을 별 볼일 없는 대학에 들어갔으면 꼬리를 내리고, 평소에는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하여 한쪽 구석에서 소리없이 구기고 있다가 돌아가던 사람이 일단 자식이 일류대에 들어가면 바로 그때부터 판세가 역전된다는 말이 있다.

내 삶의 성공 여부가 돈이 될 수도 없고, 자식이 어느 대학에 들어갔느냐도 될 수 없음인데 서울에 갔을 때,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잠시 산골 아줌마가 얼떨떨 했었다.

난 아직 그 세대가 되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자식이 일류대에 가고 안가고가 어떻게 부모의 모든 지위(?)를 자리매김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물불 안가리고 일류대에 끌어넣기 위해 목숨을 거는가 보다.
파출부를 해서라도 , 남편 몰래 밤업소에 나가서라도 애들 과외비를 벌려는 엄마들이 있다는 소식에 대해 미친 짓으로만 접어두지 않는가 보다.

그러다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하며 발등찍는 부모도 생겨나는 것이고...
사람은 자기 삶에 주인이 되어야 하고, 엄숙해야 한다.
나의 삶은 그렇다치고, 자식들 삶에 모든 것을 걸게 되면 결국 부모 자식간의 끈은 새끼줄처럼 삐그덕거리다 끊어지고 말 것이다.

난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엄마가 귀농하여 농사지으며 고생하는 것이 다 너희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다 너희때문에라는 것은 없다. 엄마도 엄마 삶이 중요하고, 아빠와 이 삶이 좋아서, 그리고 너희를 자연에서 키우고 싶어서 산골을 택한 것이지 전적으로 너희때문에 고생한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라.

다만 엄마가 선택한 소중한 삶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바라건대 엄마가 엄마 삶에 정말이지 최선을 다하듯, 너희도 너의 신분으로서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고...

   
이제 중2인 아들 놈과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이 얼마나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얼마 전에 선우는 엄마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 것같다고 묻지도 않은 말을 한다만 언젠가는 지들도 그 뜻을 알고 자신이 무엇을 위해 최선을 해야 하는지 알 것이라고 믿는다.
초보농사꾼이 서울로 교육을 받으러 가면서 아이들을 불러 모은다.

"얘들아, 아빠가 내일 돌아올 때까지 저 윗밭에 있는 철봉들을 다 집 앞으로 옮겨다 놓아라. 산머루가 잘 자라도록 지줏대를 세워주게"
초보농사꾼은 넘치지 않을 만큼씩 아이들에게 자주 일꺼리를 준다.
공부를 하든, 책을 보든 상관없이...

다른 부모같았으면 공부하고 책보는데 방해될까봐 까치발 들고 다니련만 그는 공부고 책이고 가차없다.
그래서인지 도시에서 살 때보다 초보농사꾼과 아이들과의 관계가 훨씬 맑고 따사롭다.
지금 초보농사꾼은 그만의 방법으로 아이들과의 관계의 끈을, 어떤 덜그럭거림에도 쉽게 끊어지지 않는 끈을 엮고 있는 것이다.

아빠가 돌아오시기 전에 철봉을 옮겨야 한다며 아무 생각없는 주현이를 불러 함께 밭으로 가는 선우.

두어개 낑낑거리며 나르더니 제 키의 몇 배나 되는 것도 요령있게 잘 옮긴다.

"엄마, 정말 무거워요. 보기와 다르네요."
철봉을 다 나른 뒤 땀흘리며 아이들이 흘린 말이다.

그는 이 순간, 세상엔 보기와 다른 것도 있다는 교훈을 얻었을 것이고, 아빠가 돌아오시면 잘했다고 칭찬하실 것을 상상하며 어깨에 힘을 바짝 주고 아빠를 기다릴 것이다.

산은 머리부터 이불을 갠다.
하얀 이불을 머리 꼭대기부터 걷기 시작하면 아랫도리는 차분히 차례를 기다린다.
이윽고 햇살이 치받쳐옴과 동시에 모든 안개 이불을 다 걷어내고 맑은 얼굴로 아침을 맞는다.
게으른 산골아줌마는 그때서야 눈을 비비며 이불갤 준비를 한다.
난 언제나 그들과 장단을 맞추며 아침을 맞을까.
저녁형 인간인 나로서는 평생 엄두도 못낼 일이지 싶다.

산골 오두막에서 배동분 소피아

저작권자 © 울진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