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공직생활을 마감하는 임영수 산림과장의 정년퇴임식이 6월 15일 군청 대회의실에서 있었다.
김용수 군수는 격려사를 통해 “공직을 천직으로 알고 불철주야 노력한 임영수 과장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고 말했다.

임영수 과장은 퇴임사를 통해 “평생을 몸담았던 직장, 젊음을 불살랐던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정든 직장 동료들과 헤어져야 하니 만감이 교차된다”며 “ ‘해풍은 불어도 나무는 자란다’라는 철학을 가지고 바닷가에 나무도 심고, 백일홍 꽃나무도 심고, 휴양림도 만들고, 죽자사자 산불을 끄던 때를 생각하니 그때는 힘들었지만 보람있는 일이었다” 고 말했다. 또 후배 공무원에게 “울창한 산림은 울진의 최고 브랜드다. 푸른 숲 푸른 바다가 있는 울진! 仙山東海를 영원히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몇 명 안되는 산림 공무원 많이 도와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 날 퇴임식에는 김용수 군수, 사영호 군의회의장, 방유봉 도의회 농수산위원장, 경상북도 정재수 산림과장 등 하객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 날 임영수 과장에게 군수의 공로패와 경상북도 산림공무원의 감사패가 전달되었다.

이날 퇴임한 임영수 과장은 70년대 어려운 국가경제 속에서 국가의 역점사업으로 시행하던 치산녹화사업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여 산지자원화 조성에 헌신했으며, ‘84년도 발생한 솔잎혹파리를 계획적인 방제작업으로 완전 박멸하여 전국 제일의 소나무가 울창한 군으로 우뚝 서는데 기여했다.

특히 2000년 4월 12일 강원도에서 발화되어 넘어온 대형산불을 일사불란한 진화작전으로 22시간 만에 조기진화 하여 산림자원보호 및 군민의 재산을 보호했다. 당시 산불진화 체계의 모델을 제시하여 산림청 시책에 반영해 경상북도 산림과학 박물관에 산불진화 우수사례로 선정되어 전시되고 있으며, 그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수상한 바 있다.

아울러 산불로 황폐화된 도경계 산지를 경상북도 도화인 백일홍 동산조서으로 조기 복구하여 산불예방교육의 장이 되고 있으며, 지역의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조성했다.

 2000년, 2001년 2회에 걸쳐 울진소나무 보전을 위한 국제심포지움 개최로 울진금강송의 우수성을 대외에 널리 알려 인정 받았으며, 울진금강송 브랜드 개발과 상표등록을 통해 울진금강송 육성사업을 시책사업으로 추진했다.

1991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송이산가꾸기 사업을 실시하여 산림소득증대 기반조성에 크게 기여 하였으며, 자연휴양림조성 및 산촌종합개발사업 추진과 아울러 88년부터 평해에서 백암온천간 백일홍 12,000본을 식재하여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경관을 조성해 2001년 산림청과 생명의 숲 국민운동본부가 공동주관한 생명의 숲가꾸기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거리 숲 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도로변에 향토자생 야생화를 자체생산 식재하여 2005년도 경상북도에서 주최한 아름다운 경북가꾸기사업 평가에서 울진군이 최우수기관상의 영예를 차지했으며, 2005울진세계친환경농업엑스포 행사를 대비하여 엑스포공원 조성과 도화거리 조성, “해풍은 불어도 나무는 자란다”는 일념하나로 해안숲 조성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여 성공적인 엑스포행사가 되도록 일익을 담당하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공적을 남겼다.

퇴임하는 임영수 과장은 공직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오직 지역발전과 주민복리증진을 위하여 희생과 봉사정신으로 열심히 일해온 울진의 산림계 거성으로 꼽히고 있다.

정년퇴임을 맞이한 임영수 과장을 만나보았다.

38년 동안 몸담았던 공직생활을 마감하시게 되었는데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재임 38년중 31년을 산림직에 몸담았다. 그렇다고 보면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산림과 함께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임업직으로 초임 발령받아 평해읍 근무를 시작으로 공직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러다 도내에서 50명 뽑는 우수 공무원 양성 코스인 화랑반에 뽑히게 되어 산림공무원이 되었다.

그러나 기술직 공무원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진급이 잘 안됐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 빈곤감을 많이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특별한 분야에 근무한다는 자부심과 남다른 일을 한다는 긍지가 컸기 때문에 마음의 중심을 거기에 두고 일하다 보니 조급증도 희석되었다.

또 하나는 여러 가지 의견제시가 많았던 백일홍 꽃길, 땅사들이는 일이 힘들었던 구수곡 휴양림, 쌍전리 산촌개발 사업 등을 추진한 결과 좋은 반응을 얻었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평소 생각하던 공무원에 대한 신조라면?

공무원은 우선 양심적이어야 한다. 그러기때문에 '신뢰'를 큰 가치고 본다.
공무원은 주민들에게 신임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을 속이는 일은 절대 용납 못하는 성격이다 보니 나부터 양심적이려고 노력했다.

또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것 또한 중요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공무원은 자신의 분야에 대해서는 폭넓게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
나 또한 내 분야에 대해서는 몸소 연구하고 실천하는 자세, 체험하는 자세로 임했다.

요즘 대학, 대학원 졸업생들이 많이 들어오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열성이나 연구하는 자세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들이 정보는 많을지 모르나 스스로 체득하는 지식면에서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아쉽다.

산림 공무원들 사이에서 호랑이 과장으로 통하셨는데, 무서워했지만 존경하는 마음 또한 깊은 것으로 안다. 그 비결은 무엇인가?

'사랑할수록 매를 든다'는 말처럼 대하다 보니 무섭게 비춰진 모양이다.
'산림과 직원은 자신의 발자취로 만들어진다'고 할만큼 앉아서 하는 업무가 아니다.
수없이 산을 다니면서 체득해야 한다.
나 스스로도 수없이 산을 뒤지고 다니고 연구, 실천하면서 엄격함을 보이다 보니 그렇게 평가된 것같다.

그러나 부당한 지시를 하지 않았고, 잘못한 것은 엄격히 짚었다.
누구 앞에서도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고, 맞는 것은 그렇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위를 보기 보다는 아래 직원들에게 마음을 더 두었다.
그러나 38년 공직생활 동안 산림과 직원이 징계맞은 적이 없다.
또 열심히 일했을 때는 진급에 최선을 다해 주었다.

그러자니 솔선수범해야 했고, 엄격해야 했다.

이처럼 내가 엄격해야만 했던 마음을 직원들이 읽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산림과 하면 산불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강원도의 대형 산불은 온 국민이 안타까워 했던 산불로 각인되어 있는데,  그 산불 진압으로 대통령 표창까지 받으셨다. 당시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산불은 전쟁이다. 국토를 잠식하는 것으로 보면 산불진압이야말로 전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삼척에 불이 났을 때, 정세파악을 한 결과 매우 위험한 지경이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울진으로 불이 넘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군수에게 민방위동원령을 선포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결국 대한민국 최초로 산불진압에 민방위동원령이 내려졌다.
그때 특전사 요원들까지 동원되었으니 전쟁과 같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사사고가 날까봐 애를 태울 정도로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잘 진압되어 가슴 뿌듯한 일로 가슴에 담고 있다.

군 산림 행정에 대해 강조해주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울진의 장점은 울창한 산림이 85%라는 것과 바다가 있다는 것이다.
'산이 죽으면 바다도 죽는다'고 할 정도로 모든 것은 산에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산림정책을 펼 때, 이런 좋은 자연조건을 파악하고 잘 발전시켰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림공무원은 나무와 대화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
나무를 보면 목이 마른지, 뿌리가 썩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의 애착과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 드린다.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졸업'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전주곡이듯이 '퇴직' 또한 끝이 아니라 또 다른 걸음을 힘차게 내딪기 위해 신발끈을 보다 단단히 묶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산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며, 산을 사랑하고 유지, 발전시키는 일에 나머지 정열을 쏟고자 한다.
러시아 속담에 '바다에 항해를 떠날 때에는 한 번 기도하고, 싸움터에 나가기 전에는 두 번 기도하라. 그러나 결혼할 때는 세 번 기도하라. 는 말이 있다.
난 매순간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제부터 나를 버리고 남에게 깨끗한 공기, 맑은 물, 아름다운 환경과 열매뿐 아니라 죽어서 값진 목재를 남기는 나무처럼 힘차게 나의 길을 가고자 한다.

임영수 과장의 약력

1947년 5월 1일 울진읍 읍내리 101번지에서 출생 / 1964년 울진고등학교를 졸업 / 1969년 6월 15일 공무원 임용 / 1971년 8월 26일 군 입대 / 1974년 6월 20일 육군병장으로 병역의무 후, 복직 / 퇴임까지 38년간 공무원
재임기간 중 주요행적
읍면 근무를 거쳐 1976년 군 본청으로 전입 후 보호계장, 식수계장 / 1998년 사무관으로 승진 후 서면장, 북면장, 울진읍장, 산림과장 역임
상훈 : 도지사 표창 2회 / 장관상 3회 / 대통령표창 등 다수
김만임 여사와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취미는 등산, 테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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