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하면서 아이들과 약속한 것이 달랑 둘이었는데 그 중 하나가 한 해에 최소한 한번은 기회가 닿는대로 다른 나라 사람들의 풍습을 익히고 삶의 모습과 그 문화를 배워 보자는 것이었다.

해마다 그 약속을 지켜 왔고 올해도 땜빵할 차례가 되었다.
지난번에는 주현이가 여행을 골랐으니 올해는 선우가 여행지를 고르게 되어 있었다.

선우는 뜸도 들이지 않고 거침없이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앙코르와트’에 가보고 싶단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선우다운 대답이라 흔쾌히 그곳으로 정했다.

캄보디아 하면 크게 두 가지가 떠오를 것이다.
킬링필드와 7대 불가의인 앙코르와트.

킬링필드로 알려진 대학살의 잔상은 와트마이 사원에 들렀을 때 일부 볼 수 있었다.
폴포트가 이끈 크메르루즈 정권시절의 잔인하고 무자비한 학살의 흔적들이 세월이 지나도 퇴색되기 싫은듯 빛바랜 모습으로 강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고문과 죽고 죽였던 흔적은 사진으로, 해골로, 보는 이의 눈과 명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선우, 주현이도 오랫동안 전시된 해골 앞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앞으로의 세대만큼은 어느 한 삶이 이토록 어처구니 없는 사상으로 짓밟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강하게 일었다.

그 외에도 롤레이 사원, 벤데스레이, 바콩사원, 타프롬 사원, 바이온사원, ‘왕 과 나’라는 영화에서 율브린너가 앉았던 코끼리 테라스 등 우아하고 정교하고 거대한 모습을 힌두신화를 들으며 관람하니 아이들에게는 더없는 산교육이었다.

안그래도 신화에 관심이 많았던 두 놈의 눈과 귀는 어느 때보다 신경이 남다르게 움직이는 것같았다.
그리고 캄보디아 국기에도 앙코르와트가 그려져 있을 정도로 캄보디아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앙코르와트....

피라밋은 모래를 동원하여 돌을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공사를 했음이 확실시되지만 앙코르와트는 어떻게 7톤, 8톤이나 되는 돌을 1,800개나 올려 놓을 수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것도 이 어마어마한 공사를 단 37년만에 해치울 수 있었다니...
물론 추측은 사원과 주위에 있는 호수가 생겨난 연대가 비슷한 것으로 보아 호수의 흙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추측만 할뿐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단다.

그 귀한 유적지 곳곳이 허물어지고 파손되어 방치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했다.
그 나라가 선진국이냐, 아니냐의 기준은 여러 가지 요인으로 파악할 수 있겠지만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되는 기준이 문화재를 어떻게 보존, 관리하느냐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선진국일까?
이제 답은 분명해졌다.
국보 1회를 홀라당 불태워 날렸으니 말이다.
그러니 남의 말할 처지는 못된다.
이들 사원 외에도 아이들에게 산교육이 될만한 똘레호수의 수상가옥도 보았다.

어느 나라를 여행하든 초보농사꾼이 저녁마다 가이드 눈을 피해 식구들을 데리고 거리를 활보했었다.
그러나 캄보디아는 정세가 아직도 불안정한 나라라 이번에도 말렸다.

말린다고 들을 초보농사꾼이 아니지...
결국은 내가 자는 사이 박씨들과 조카를 데리고 밤거리를 활보한 것.
다음 날 후기를 들으니 아이들도 처음에는 안가고 싶었는데 아빠가 안간다고 해서 안데려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냥 따라나섰단다.

현지 사람들과 말이 안통해 얼마나 재밌게 서로 의사소통을 했는지 배꼽을 잡고 왔다며 다음 날 밤 나만 왕따시키고 또 나간 사람들이다.

여행다녔던 기억 중에 애들이 빼놓지 않고 재밌게 기억하는 것이 결국은 지애비와 그렇게 밤마다 철없는 짓 한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묵인하지만 속은 건포도처럼 다 탄다.

저 박씨들이 난 앞으로 제대로 , 아니 정상적으로 진화하기를 무지 바란다.
늘 여행지에서 하는 일이지만 매일 저녁 호텔방에서 저녁 토론을 할 때 기대 이상의 배울 점이 많고 감동적인 나라라고 두 놈다 만족해했다. 내가 봐도 이번 가족여행의 감동바구니가 미어터질 것같았으니까. 

여행의 마지막 밤이다.
내일이면 내 삶의 바탕화면으로 스며들어가야 한다.
여행이란 기대없이 훌쩍 떠나와서 거리낌 없이 본연의 자리에 매끄럽게 들어 앉아야 한다.
내 삶의 고난이나 슬픔까지도 여행이 희석해 주길 기대해서는 안된다.
여행 자체가 마음의 그릇이어야 한다.

내가 거기에 여행지에서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울림이 다를뿐이다.
결국, 여행은 경계 없는 곳으로의 내딪음이며, 무의식에 비추는 햇살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기에 이 삶이 다하는 순간, 되돌아봄에 여행의 흔적도 내 그릇 속에서 산뜻하게 빛나길 바랄 뿐이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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