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야,

오늘은 답운재밭에서 아빠와 퇴비 뿌리는 일을 도왔어.

원고 정리하느니 뭐니 하면서 아빠 일을 못도와 드린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려 오늘은 삽들고 나섰지.

 

아빠는 엄마 책내는 원고 일이나 하라셨지만 농사 일이란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누가 옆에서 조금만 거들어 주어도 한결 수월하잖니.

 

 

 

오랜만에 답운재밭을 갔더니 밭 옆 개울가에 양지꽃이 엄마를 반기더구나.

샛노오란 양지꽃과 눈인사라도 하려고 개울을 건너 언덕으로 기어 올라가니 파스텔톤의 제비꽃도 수줍은듯 아는체를 하더구나.

 

일단 그 도반들이 내 사기를 북돋아 주었으니 기를 모아 즐겁게 아빠와 퇴비를 폈단다.

엄마가 늘 입에 다는 소리지만 사람 일이란 마음에 달려 있다는 말을 하고 싶구나.

 

어떤 일이든 징글맞게 생각하면 한없이 골때리고 이가 갈리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즐겁게 하자는 주문을 외우면 바로 약발이 받아 신바람 버전으로 일분위기가 바뀌지.

 

공부나 숙제도 마찬가지란다.

다만 시대가 이렇게 까칠해서 너희 세대들이 생고생을 하는 부분을 인정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니 그대로 받아들임이 좋을듯 싶구나.

 

그런 시절을 즐겁고, 활기차고, 자신감 넘치게 보내느냐, 아니냐에 따라 그 이후의 삶, 즉 평생의 삶이 핑크빛인지, 우거지상인지가 판가름난단다.

 

우리 선우 고교생활을 잘 하고 있지만 노파심에서 한번 이야기하는 거란다.

우리 아들이 엄마의 이 편지를 읽는 곳이 어딜까?

 

관광버스 안?,

비행기 안?,

아니면 수학여행지 제주도?

 

수학여행!

듣기만 해도 엄마의 그 시절이 생각나 두 눈을 감게 되는구나.

엄마가 수학여행을 경주로 기차를 타고 갔단다.

 

그 시절 유행했던 노래가 대학가요제라는 대회에서 1등을 한 서울대 팀의 ‘나 어떻게’라는 노래였지.

그 노래를 기차 안에서 목이 터져라 부르며 웃다가, 장래의 꿈과 진로를 이야기할 때는 한없이 진지해지던 시절이었단다.

 

그러나 지금 너희 세대의 여유 없고, 꿈이 없는 교육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

공부에만 시달리는 아이들, 학교가 아니라 동물원이라는 생각까지 든단다.

점심, 저녁.... 조련사(?)가 주는 밥을 먹고 다시 좁은 책상에서 어둔 밤이 될 때까지 또 공부...

그것도 모자라 야간자율학습이 밤 10시에 끝나고도 학원으로 가는 아이들이 많다고 들었다.

 

그게 현실이지.

그러나 현실은 현실대로 받아들이지만 우리 아들 선우의 마음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몇 가지 전하고 싶구나.

 

첫째,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매순간 지금이 행복의 적기라고 생각해라.

 

과거는 흘러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 현재 충실하고 행복해야 한단다.

엄마가 살아보니 딱 맞는 말이더구나.

엄마처럼 세월이 흐른 후 터득하기 보다 지금 터득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여 말하는 거다.

 

둘째, 정약용 선생이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쓴 ‘친구를 사귈 때 가릴 일’이라는 편지글을 소개하고 싶구나.

 

“자기 몸을 엄정하게 닦아 놓았다면 그가 사귀는 벗도 자연히 단정한 사람이어서 같은 기질로 인생의 목표가 비슷하게 되어 친구 고르는 일에 특별히 힘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좋은 친구를 원한다면 네 자신부터 좋은 친구가 되도록 해라.

 

모든 사람에게는 향기가 있다.

그 향기에 따라 달라드는 것이 다르다.

벌이 될 수도 있고, 똥파리가 될 수도 있고, 나비가 될 수도 있고,,, 말이다.

 

셋째, 괴테의 말로 엄마의 마음을 전하고 싶구나.

 

“재산을 잃는 일, 이는 조금 잃는 것이다.

당신은 바로 좋은 방도를 생각해 새로운 재산을 얻으면 된다.

명예를 잃는 일, 이는 아주 많이 잃는 것이다.

당신은 평판을 얻어야 한다.

평판을 얻으면 사람들의 생각은 변할 것이다.

용기를 잃는 일 이는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그러려면 아예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낫다“고 했다.

 

용기는 또 다른 옷을 입은 자신감이라고 엄마는 생각한다.

어떤 일 앞에서든 용기있고, 자신감 넘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탈무드에 “책과 양복이 동시에 더러워지면 책부터 닦아라”라는 대목이 있는데 이는 평생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독서란 단순히 대학을 가기 위함이 절대로 아니다.

평생 함께 가야 할 스승이요, 도반임을 명심, 또 명심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 귀양가던 해에 보낸 편지에서

“천지간에 외롭게 서 있는 내가 운명적으로 의지할 곳이라곤 오로지 책과 붓이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책은 네가 어떤 상황, 처지에 있든 너를 배신하거나 실망시키는 일 없이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고 길 위에서 네 어깨에 손을 얹어주는 벗이 되어 줄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시간이 빠듯한 고등학생이라 하더라도 책읽기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선우야!

 

시험을 일주일 남겨두고 떠나는 여행이라 부담스러우리라 믿어.

그러나 순간에 충실하라 했듯이 시험은 아직 닥치지 않은 일이니 여행에 올인하고 친구들과 멋진 추억 짓기 바란다.

 

그리고 선우야,

새 학년이 되어 네가 그랬지.

담임 선생님이 엄하셔서 조금 무섭다고...

 

엄마가 어머니총회에서 선생님을 뵙고는 참으로 감사했단다.

엄하신 모습 뒤의 따사로움이 풍부하신 분이라는 확신이 들어서다.

평소에 네가 그랬지.

“엄마, 나도 엄마처럼 결혼해서 애낳고 늙으면서도 찾아뵐 수 있는 스승이 많았으면 참 좋겠어. 엄마가 부러워.” 했지.

 

그것은 네게 달렸다.

사람은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말을 기억할거다.

그러니 좋은 담임 선생님 만난 것에 감사하고 네가 선생님을 어떻게 대해드리느냐에 따라 스승과 제자 사이는 판가름 난단다.

 

이번에 엄마가 선우에게 쓴 편지 중에서 제일 긴 사연이 될 것같구나.

여행 내내 즐겁고 건강하길 빈다.

 

산골에서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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