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령의 열두고개는 쇠치재→세고개재→바릿재→새재→너삼밭재→저진터재→새넓재(한나무재)→큰넓재→너룻재 로서 여기가 세 번째 령(嶺)인 `바릿재' 입구이다.

현지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열 한 고개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많다. 이 십이령은 옛날 보부상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나 관원들 등 모든 사람들이 이용하던 주 통로였다.

바릿재를 넘어 올라가면 장평이란 고갯마루를 거치는데 이 고개에도 낡은 성황당이 있다. 성황당 주위에는 고목 몇 그루가 오랜 사연을 말해주듯 가파른 언덕위에 서있고 지명처름 제법 평평한 농토들이 많다.

한나절 길을 임도를 따라 올라가다 갑자기 가파른 산길로 접어들어 무릎이 빠질만한 낙엽속을 뚫고 올라가면 새도 쉬어 넘는다는 ‘새재’성황당에 이른다.

이 새재는 십이령 중 4번째 재로서 ‘조령(鳥嶺)'이라 한다. 성황당은 비교적 깨끗한 편으로 「鳥嶺城隍祠」란 양각 현판이 퇴색된 채 매달려있다. 사당 안에는 켜다 남은 몽당 초들이 무수히 나딩굴고 놋쇠 술잔과 조제된 향들이 습기에 차 눅눅한 채로 아무렇게 놓여있다. 벽 사면에는 「성황당 重修記文」들이 빼곡히 매달려 있는데 열댓 개는 됨직하다.

무수한 세월동안 자연 풍우로 성황당이 허물어질 때마다 지역의 재력 있는 분들이 자금을 거출하여 중수하였다는 기록이다. 중수기에 적힌 이름들을 살펴보니 현존하는 울진의 유지들의 이름들도 간혹 보인다.

일반적으로 높은 령에는 성황당이 있는 곳이 많다. 조령 성황당은 오가는 길손들만 치성을 드리는 당이 아니라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까지 매년 정기적으로 배향한다고 하여 타 지역의 성황당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새재를 넘어 봉화장까지 가려면 인적이 없는 산길을 장시간 걸어야 하기 때문에 오가는 보부상들은 이 성황당에 신변의 안전과 성공적인 행상을 기원했다.

새재 성황당을 지나 아래로 뻗은 숲길을 약 30미터 정도 내려가면 주막집이 있었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집터에는 불 맞은 구들장이 그대로 있고 불맞은 구둘 골도 보인다. 그리고 당시에 사용하던 구멍난 무쇠 솥과 마시고 버린 소주병들도 깨진채 발견된다. 성황당에서 잠시 땀을 식힌 보부상들이 주막집에 들러 막걸리 한사발로 시장기를 메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늘을 찌르는 낙엽송 숲을 따라 내려가는, 주막집터 바로 아래 길옆에는 큰 자연석 바위 위에 세운 한기의 현령 불망비를 볼수있다. 나지막한 청색돌의 비석은 바위에 홈을 파서 세웠는데 본래 이 자리에 있었던 것인지 모를 만큼 엉성하다. 보통의 비석들은 비석 본문 말미에 `비(碑)'라는 글자가 새겨 졌는데 이 비석은 ‘불망(不忘)'까지만 새겨져 있어 혹 미완성 작품이 아닌가 생각케 된다.

이 비석은 ‘현령 이광전 영세불망비'로 청대 연호인 ‘道光22년'으로 기록되어있고 우측에 작은 글씨로 `西面 通三里' 라고 적혀있다. 도광 22년은 서기 1842년이다.

숲속이라 햇볕이 잘 들어오지 않아서 인지 한껏 자란 이끼들이 새파랗게 덮혀있어 글자까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누군가가 비석을 소중히 생각하고 비석을 잘 보관한것이 고마웠다.

비석을 지나 불과 100여미터만 내려가면 길 좌측편으로 숲속에 쌓인 무덤 한기를 발견할 수 있고 무덤 아래 위에는 큰 바위가 하나씩 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무덤을 사람들은 말(馬) 무덤이라고 말한다.

옛날, 동쪽 산 넘어에 있는 `안일왕 산성'을 만들 때 마귀할멈이 매일 말(馬)에다 돌을 실어 날랐는데 어느 날 말이 늙고 지쳐서 중간에서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귀할멈이 말을 묻어주었다고 하여 말(馬)무덤으로 전해지고 있다. 무덤의 아래와 위에는 그때 말 등에 실었던 바위가 하나씩 놓여 있어 구전을 뒷받침해 주고있다.

무덤은 관리를 하지 않아서인지 잡목이 자라 무덤인지 언덕인지 알아보기 어렵다.

말 무덤을 지나 계곡의 맑은 샘물이 흐르는 청아한 소리를 들으며 산 계곡을 내려가노라면 우거진 잡목 원시림이 하늘을 한 점도 볼 수 없도록 덮어 마치 무인도에 홀로 떨어진 듯 함을 느낀다. 두껍게 쌓인 낙엽 사이로는 이름 모를 각종 야생초들이 힘차게 솟아오르고 이르게 핀 야생화들이 낙엽을 뚫고 수줍게 고개를 내민다. 가끔 고라니, 멧돼지, 너구리, 오소리 등 야생 동물들을 만났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산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간혹 들려 무서움을 느끼기도 한다.

우거진 산속의 숲길 좌우에는 이름모를 나무들이 저마다의 키를 자랑하고 만개한 산벗나무 꽃과 탐스럽게 하얀 돌배나무의 꽃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아마 옛날 지나던 행객들이 배를 깎아먹고 버린 씨가 자라서 돌배나무가 이렇듯 많은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제 멋대로 맘껏 자란 각종 잡목들과 금강소나무의 쭉쭉 뻗은 붉은 몸체가 잘 어우러져 직접 와서 체험해 보지 않고는 그 전율을 느낄 수 없다. 수정같이 맑은 계곡물은 바닥까지 드러내며 들이키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고 어린 피라미들과 다슬기 조개들이 한가롭게 헤엄치는 모습, 한 폭의 그림이 아닐 수 없다.

싱그러운 냇물 소리를 들으며 우거진 잡목사이로 30여분을 내려오면 소광천에 다다른다.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넓은 바위 사이로 흐르는 개울물에 발을 담그면 산길을 내려왔던 발의 피로가 금새 사라진다.

이어서 계곡 좌우에는 금강송 숲이 끝없이 펼쳐지는 신작로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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