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천연염색 강연장이다.

수강자가 있든 없든 제 몸을 하루가 다르게 염색해 보이며 가을을 강의하고 있다.

형형색색으로 염색이 잘 되었다 하여 그것을 뽐내거나 거들먹거리지도 않고 그것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때가 되면 그 아름다운 옷도 다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겨울을 난다.

인간사에서는 정신나간 행동임에 틀림없다.

인간이야 작은 거 하나라도 손에 들어오면 꼭 쥐고 놓을줄 모르지만 그들은 거침없이 놓는다.

놓아야 더 큰 것을 얻고 내면이 풍요로워짐을 안다.

세상의 모든 자연물이 다 아는 진리를 영악하다는 인간만 모른다.

오늘도 병풍처럼 둘러쳐진 통고산 자락을 보며 자연이 몸소 들여주는 말에 귀기울이고 있다.

언젠가는 콘크리트보다 더 강한 세상 것들로 들어 차 있는 귀가 뚫어지겠지...

 

하루를 들여다 보면 다른 이에게 하는 물음이나 말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피해의 중심에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가족이지 싶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영역을 더 확장하여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염병처럼 옮겨간다.

죽어도 짹한다고 물론 사랑과 관심이 있어서라고 변명한다.

이것은 관심하고는 또 다른 거다.

사랑과 관심에서 그렇다고 이제껏 나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랑과 관심이라는 탈을 쓴 간섭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정녕 사랑과 관심이 있다면 지켜 보야 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가, 특히 가족에게 뱉는 말 중에 안해도 되는 말이 얼마나 많은지...

특히 아이들에게 말로 가르치려 하지 않는가.

온갖 수식어를 써가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주입시키려 든다.

그렇게 쏟아낸 말들을 죽 펼쳐 놓고 찬찬히 들여다 보라.

꼭 말로 해야만 했던 말들이었는지...

불필요했던 것들을 추려 내고 나면 남는 것이 별반 없을 것이다.

믿음으로, 침묵으로, 행동으로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던 사항이 더 많을 것이다.

가을이다.

이제는 밖으로 내돌렸던 시선을 안을 향해보자.

자신에게 거듭거듭 물어보자.

나는 내 길 어디쯤에 와 있는지...

내 삶의 무게에 맞는 신을 신고 그 길을 잘 가고 있는지...

과거에 매이지 않고, 오지도 않은 미래를 앞질러 가지도 않고 지금, 현재에 살기 위해 주어진 하루하루에 마음을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는지...

금쪽 같이 귀히 주어진 하루를 얼마나 긍정적으로 살고 있는지...

다른 이에게 카랑카랑하다 못해 째진 목소리로 들이댔던 대로 자신에게 물어보라.

안으로 살피고 살피는 사람에게선 자신감뿐만 아니라 범접할 수 없는 향기가 넘쳐 난다.

그것으로 자식을 키우고 사람을 대해야 하는데 입이 먼저 동작을 시작하니 사단이 나는 거다.

지금 내 얘기를 너무 다 드러내 놓고 하고 나니 기운이 쭈욱 빠진다.

가을은 지 얘기도 남 얘기같이 할 수 있는 용기있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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