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면 구산리와 평해읍 월송리 경계지점 하천 부근에 아담한 비각이 하나있다.

이 비각 안에는 희뿌연 색깔의 석비 1기가 세워져 있는데 이 비석이「북천교비(北川橋碑)」이다. 커브길에 있다 보니 오가는 많은 사람들이 별 관심없이 지나치고 마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400년이나 된 매우 귀중한 비석이다.

크기는 높이 187cm, 너비 64cm, 두께 18cm로 조금은 큰 편이며 1603년(선조36년) 3월에 세워진 비석이다.

당시 구산리와 월송리 사이에 하천이 있어서 건너다니기에 매우 불편하였다.

더구나 바다와 가깝다 보니 바닷물이 하천으로 역류하기도 했을 것이고 오곡리쪽 상류천에서 내려오는 물이 많아 겨울철에는 발을 걷고 건너야 하기 때문에 구산리 쪽 주민들이 매우 불편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 이곳 주민들은 교량을 만들기 위해 뜻있는 분들이 자금을 갹출하여 평해군수 조인징(趙仁徵)에게 허가를 얻어 마침내 돌다리를 만들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 비석을 세운 것이다.

돌다리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비석까지 세워 기념한 것을 보면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고 짐작된다.

비석은 앞뒤로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앞면은 비를 만든 경위와 연대가 기록되었고 그 아래에 공대주, 그리고 석수, 대시주의 명단. 그리고 배면에도 자금을 갹출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어 총 100여명의 명단이 적혀있다.

석질이 별로 좋지 않아 마모가 심하고 더구나 세 동강으로 부러져 다시 붙인 흔적으로 글씨가 마모되어 판독이 불가능하거나 불명확한 글자가 20여자가 된다.

이 비석에 쓰인 평해군수 조인징은 1599년(선조 32년) 2월16일에서 1603년 3월13일까지 평해군수로 재직하였기 때문에 이 비는 그가 평해를 떠나는 시점에 세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비석에서 중요한 것은 '한오십동, 이줏사리, 권끝쐬, 광큰 버들쇠, 황돌바우, 김늦쩡, 김늠이, 김감돌이, 김묵돌이, 김순돌이, 황끝찡, 임늦뚱, 정막똥, 황줏똥' 등 당시 막부르는 이름을 그대로 적었다는 것이다.

이 비석의 발견으로 지금의 황보천이 '북천'이었음도 알 수 있고 지금의 '군무교'가 있는 지점이 북천이 있었음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이 매우 중요하게 판정되어 2004년도에 경북도 지정 유형문화제 제361호로 지정되었다.

이 비석은 7번국도 공사도중 중간이 부러진 것을 수리하기 위하여 포항으로 보내졌다가 수리업체가 도산하는 바람에 3조각이 난 채 길가에 버려져 있었는데, 경주문화원 채무기 사무국장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다시 복구되었고 군청, 문화원 등 관계기관과 지역향토사가들의 노력으로 2004년도에 반환받아 현재 자리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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