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 없는 아름다운 왕피천 계곡을 걸으며 맑은 하늘과 반짝이는 계곡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떨어지는 낙엽의 찬란한 슬픔을 아는가? 가슴이 서늘해지고 울컥한다. 학소대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느리게 흐르는 물아래 나를 바라보았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내가’ 모질게 마음을 먹고 살게 되었다. 9년 전 10월 아이가 장애인이 되고 나서부터이다. 교복을 단정하게 입히고 아이를 업고 학교 보내는 길은 슬펐다. 알 수없는 죄책감 우울함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책감 등 복잡한 감정들과 싸우면서 힘을 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잘 키우는 것인지 아무도 엄마에게 길을 가르쳐 주진 않는다.

엄마는 오늘도 발작하며 쓰려진 아이를 바라보며 우리 삶의 정답이 무엇인지 갈등한다. 지난 9월 전국의 장애부모들이 서울 보신각에 모여 정확히 49명이 머리를 깎았다.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결단을 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는 그들의 투쟁사를 들으며 전국에서 모인 1천여 명의 부모들은 다 같이 울었다.

며칠을 배낭매고 종로 길바닥에서 자면서 외쳤다. 좀 살려달라고! 아무도 내 얘기를 듣는 것 같진 않았다. 그저 촌에서 올라온 아줌마가 자기 삶에 지쳐 악 받친 소리 하는 것으로 들었다. 그럴수록 더 미칠 것 같았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첫째 ‘장애아동재활치료서비스’이다. 이는 물리, 작업, 언어, 심리 행동 등 장애아동의 재활 및 건강한 발달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이지만, 기획재정부의 예산편성은 보편적인 복지서비스 지원이라기보다 하나의 지원 사업으로 여겨 대상자를 소득기준으로 제한을 두면서 대상자를 선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둘째는 ‘장애인가족지원’이다. 가족지원은 현재 장애아가족 양육지원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서비스를 받는 경우는 전체 장애아동의 2% 수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울진 같은 경우에는 전혀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일평생 자녀의 신변처리, 이동, 진로, 생활 등 많은 부분을 돌본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다.

셋째는 ‘활동보조’이다. 이것은 1급을 기준으로 제공되고 있지만, 발달장애인에게는 원활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없다. 활동보조서비스는 제한 없이 제공되어야 하며 심사 후 선정 방식이 아닌 필요에 의한 신청으로 선정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넷째는 ‘장애인연금제도’이다. 장애인연금의 기본은 장애인들에게 기본소득을 보존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 해서 장애인의 삶이 지금보다 월등하게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1급으로 제한하고, 알량하게 15만 원 손에 쥐어 주고 삶이 나아질 것이라 떠들지 말라. 한 달 몇 십 만원으로 살아가라는 것은 움직이지 말고, 먹지도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섯째 ‘장애등급재심사’이다. 이것이 가장 문제다. 일단 등급을 정하는 것 자체가 문제이고, 등급으로 복지지원 대상을 선별하는 방식이 문제다. 장애를 가진 것도 서러운데 그것을 빌미로 지원의 대상을 고르며 사람을 가르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복지의 본질인지 짚어봐야 한다.

보편적 복지라는 것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수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처럼 예산의 틀을 만들어 놓고서 돈에 맞춰 이뤄지는 복지는 이제 필요치 않다. 나이가 70,80 노인이 되어도 자녀의 생리대를 처리해주고, 오줌 싼 이불을 빨아본 적이 있는가? 불과 20분의 치료를 위해 왕복 4시간 포항으로 치료 받으러 다니는 그 고통을 아는가?

우리지역의 부모들이 스스로 권리를 찾고 살아갈 수 있는 그날까지 ‘나의’ 모진 삶은 계속 될 것이다. 울진에 사는 재미, 그것은 한적한 숲길을 걷는 것이다. 천천히 숲길을 걸으면 이름 모를 생명들과 만나고 청량한 공기를 마시며 빛나는 자연에서 감사한다.

소용돌이처럼 휘돌던 물길이 바위에서 작은 물결을 일으킨다. 빨간 단풍과 노란 나뭇잎이 둥둥 떠내려간다. 걸음을 멈추고 잎이 떨어진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낙엽이 후두둑 떨어진다. 깜짝 놀라 나무에게 물어 보았다. “왜 갑자기 그렇게 한꺼번에 잎을 떨구냐고”

나무는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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