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울진원자력발전소 부지를 조금 지나 북쪽으로 고개마루를 올라가는 마을이 울진군 북면 신화리이다. 이 마을의 중간 언덕배기인 신화리 246번지선에는 자그마한 고인돌 1기가 있고 그 돌에는 지름 20cm정도의 원형 말발굽이 선명히 찍혀있는 일명 “말 발굽” 바위가 있다.

말발굽 바위

말발굽 바위에서 남쪽으로 200M정도 떨어진 신화리 마을 입구 하천가를 청룡거리라 하며 여기에는 높이 2~3M 정도의 “눈물바위”가 있다. 그리고 말발굽이 있는 바위에서 남쪽으로 100M정도 떨어진 계곡에는, 지금은 묻혀져 없어졌지만 “군자정“이라는 우물1정이 있었다고 전한다.

말발굽과 눈물바위, 군자정 이러한 유적들은 신화리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과 관련된 유적으로 울진군지에도 “용마고적(龍馬古跡)”이라는 제하에 설화가 전해진다.

눈물 바위

“조선 인조 임오년(1642) 신화리 임하골(臨河谷)의 전순(田錞)이란 분의 가정에 아기가 태어났는데 이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서서 걸으며 사방으로 다녔다. 아기의 부모는 아기가 장수의 기상이 있음을 직감하고 아기의 탄생을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큰 걱정에 빠졌다. 당시에는 평민가정에서 장사나 역사가 출생하면 국가에 반란을 일으키는 주동자가 된다하여 아이를 죽이거나 부모까지 처형하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부는 은밀히 상의한 후 아기 때문에 온 집안을 망하게 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고 아기를 죽이기로 결심하였다. 곧 아이를 이불에 싸서 넓은 나무판으로 덮고 그 위에 큰 돌과 콩 가마니로 눌러서 아기를 죽이고 말았다. 이때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기상이 혼란스러웠고 홀연히 바다로부터 말 한필이 날아와 동구 밖에서 포효하면서 크게 세 번 울고 다시 바다 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마을 사람들이 놀라서 나가보니 이미 말은 사라졌고 말이 딛고섰던 언덕의 바위 위에는 말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그리고 말이 앉았던 자리에는 우물처럼 샘물이 솟아올랐고 말이 눈물을 흘린 청룡거리 바위에는 눈물자국이 깊게 패여 있었다.”

지금도 그때의 말 발자국인 “말발굽바위”가 남아있고 말이 눈물을 흘렸다는 “눈물바위”도 남아있다. 그리고 샘물이 솟던 우물터를 요즘도 “군자정“이라 부른다. 신울진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서는 마을을 ”마분동“이라 부르는데 이는 말 무덤이란 뜻으로 옛날 임진왜란 때 많은 말(馬)들이 죽어 생긴 이름이라는 말도 있지만 아기장수를 태우러 왔던 “말의 무덤”이란데서 유래되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출처:울진군지. 북면신화리 전이중 제보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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