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영사라 하면 울진군에서는 가장 오래된 사찰이자 제일 큰 절이다.

불영사는 서기 651년 의상대사가 세운 사찰로 전해지고 있다. 이때 신라는 삼국통일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구려와 백제 변방의 영토를 하나씩 복속시키던 때였다.

고구려와의 접경지대로 오랜 실랑이를 겪었던 울진지역은 이미 6세기 초에신라에 복속되어 신라 왕의 지배를 받았지만 고구려와의 접경지대에는 항상 민심이 불안하였다.

신라 정부에서는 흉흉한 민심을 안정시켜야 할 필요를 느꼈고 그 묘약은 신앙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신라는 고구려의 접경지대였던 지역에 여러 사찰을 건립하게 되는데 울진의 불영사나 봉화의 각화사, 영주의 부석사 등 교종계의 사찰이 이 무렵에 세워지게 된다.

울진, 삼척 지역은 교종과 선종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강릉, 양양, 속초 등지에는 주로 원효스님을 효시로 하는 선종계열의 사찰이 많은데 울진의 불영사에도 원효스님과 그의 제자로 알려져 있는 범일국사가 머무른 기록들이 전해지고 있어 이곳에도 선종의 바람이 불었을 것으로 보인다.

불영사 경내에는 600년 된 은행나무 한그루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보호 받고 있다. 불영사의 역사와 함께한 거목이라 불영사에서는 늘 불영사의 어떤 의미있는 일에 쓰일수 없을까를 염원하였다고 한다.  10여년전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은행나무의 중간이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 은행나무는 불영사의 역사를 고스란히 겪어온, 불영사로서는 상당히 의미가 깊은 나무이므로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불상을 조성하기로 하였다. 국내 불상 제작 전문가에 의뢰하여 4년여 고생 끝에  석가모니 부처를 비롯하여 문수보살, 보현보살상 등 3위를 제작하고  일곱 가지 보석으로 치장하였다.

이 불상은 불상 제작 최고 권위자가 심혈을 기우려 조성한 작품으로 2002년 7월7일(양력) 성대하게 점안식을 하였다.

본래 이절에 있던 불상은 석불이었는데 인도 불상기법과 닮아 어깨죽지가 올라가고 아랫입술이 튀어나온 듯하여 미관상 매우 보기 흉하였다고 한다. 오가는 사람들이 부처가 흉하면 사찰이 흥하지 않는다하여 오래전에 다른 곳으로 보내고 청동불로 다시 제작해서 봉안하였는데 그때부터 사찰이 크게 일어났다고 한다. 사찰의 역사와 함께한 나무를 활용하여 제작된 불상, 매우 의미 있고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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