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들의 침략에 대비하여 돌이나 흙으로 둑을 쌓은 것이 성(城)인데 성(城)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중국의 만리장성이다.

중국의 성의 기원은 BC 2000년경이며 유럽인 영국의 메이든성도 이 시기에 쌓여졌고 서아시아에서는 이보다 빠른 메소포타미아의 초기왕조시대인 BC 3000년대 성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한국이 본격적으로 돌을 쌓아 성을 축조한 것은 삼국시대인 3세기 이후부터이며 처음에는 대체로 토성이었으나 차츰 석성으로 발전해 갔다

성(城)은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어서 산성(山城). 읍성(邑城). 나성(羅城). 장성(長城).도성(都城)등으로 구분된다. 산성은 자연적 지형과 지세를 최대한 활용하여 쌓았는데 장기간의 항전에 유리하고, 읍성은 지방의 행정 중심지에 축성되며 성 안에 관아와 민가를 함께 수용하여 행정기능과 군사기능을 동시에 할 수 있었다.

도성은 왕궁이나 종묘사직이 있는 도읍지를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으로 고구려의 국내성(國內城), 백제의 풍납동토성(風納洞土城)이 유명하며 신라는 명활산성(明活山城)이 도성역할을 하였다.

성을 쌓는 재료에 따라 나무로 된 목책성을 비롯하여 흙으로 쌓은 토성, 돌로 쌓은 석성, 돌과 흙을 섞어 만든 ‘토석혼축성’이 있다.

성(城)은 본래 외부에서 공격하는 적을 방어하는 군사적 목적이었지만 시대가 흐름에 따라 왕권의 표식, 영내 통치 등의 목적으로도 쌓여졌다.

읍성은 보통 타원형 또는 원형의 형태이며 평상시에는 행정의 중심부 역할을 하지만 유사시에는 군사적 요새가 되어 군,관,민이 함께 성을 지켰다. 이러한 읍성의 형태는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것으로 고려말기에 처음으로 등장하여 조선초기에 크게 발전하였다.

읍성은 주로 해안지역인 남해, 서해, 동해 지역에 많이 만들어 졌는데 이는 왜구의 침략에 대비한 것이라 한다.

울진군에도 13개의 성(城)이있는데 북면의 안일왕 산성, 온정의 백암산성, 죽변의 장산성, 온정의 고모산성 등 고대 산성들이 있고 울진, 평해, 기성, 서면, 죽변 등지에 9개의 읍성이 있다.

평해읍성은 평해읍사무소 뒤편에 반달모양으로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현재 행정구역상 평해 2리인 해방촌 마을 뒤편으로 하여 평해읍사무소 와 평해 향교 뒤편 까지 뻗어있다.

1984년 울진군지의 기록에는 ‘원래 이 성은 토성이었든바 세종 16년(1434) 갑인(甲寅)년에 처음 석성을 쌓으니 주위는 2,325척이며 높이는 9척이라. 성내에 우물3개소가 있고 연못이 2개소가 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성종9년(1478)5월28일 기록에 안관후가 ‘평해읍성은 담장수준이므로 크게 새로 쌓아야 합니다’라고 임금께 건의한 기록이 있고. 성종23년(1792년) 10월30일 기록에는 ‘강원도 평해읍에 성을 쌓았는데 높이가 15척이요 둘레가 2,357척’이라고 적고 있어 평해읍성은 본래는 토성이었는데 1434년 (세종16)에 처음 돌로 쌓았고 1792년(성종23)에 다시 크게 축성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894년경에 만들어진「대동지지」에는 ‘우물이 6개소가 있다’는 기록으로 보아 본래 3개소였던 우물도 나중에 6개로 더 확보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지금도 평해읍성의 일부 구간은 잔존성벽이 그대로 남아 옛 모습을 대변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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