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죄악에서 구하고 영원한 삶을 살게하기 위하여 자신의 아들인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모든 인류는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수 있음에 감사하여 성탄을 축하한다.

예수님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늘나라로 올 자가 없다”라고 말씀하셔서 영원한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비밀은 예수를 믿는 길 외에는 없음을 알려주셨다.

이러한 복된 소식을 안고 개신교가 한국에 건너온 것은 1885년 4월5일의 일로 감리교의 ‘아펜젤러’ 목사부부와 ‘언더우드’ 목사가 인천 제물포항에 입항하면서 부터이다.

울진지역에도 104년 전인 1907년 행곡리와 구산리에서 침례교회가 시작되었고 같은 해에 감리교회도 북면 고목리에서 예배를 시작하였다. 이듬해인 1908년경에는 평해감리교회가 삼달리에서 시작되었고 1909년에는 용장교회도 세워졌다. 이렇게 뿌려진 한 알의 밀알들이 오늘날 77개의 교회들로 불어났다.

울진지역의 교회 중 가장 먼저 공식적으로 교회당을 건축한 것이 ‘행곡 침례교회’이다.

침례교는 1889년 캐나다의 ‘말콤펜윜(Malcolm C. Fenwick)’이라는 선교사가 한국에 온 것으로 시작되어 1906년 충남 강경에서 31개 교회가 모여 ‘대한 기독교회’를 창설한 것이 침례교단의 출발이다.

‘말콤펜윜’ 선교사의 영향을 입은 ‘손필환’이란 교사가 행곡리에 와서 ‘남규백’씨의 개인 초당채를 빌려 ‘전성수’씨를 창립자로 하여 예배를 드린 것이 시초로, 이 예배가 발전하여 1908년 11월15일 정식으로 교회를 창립하였다.

그후 1910년 자그마한 초가 한 채를 신축하여 예배를 드리다가 1936년 울진읍성에서 병사들의 숙소로 사용하던 기와집을 매입하여 이축하였다.

건물 대들보 밑면에 있는 상량문에 묵서로 ‘嘉慶十四年己巳三月二十五日午時立柱上樑(가경십사년기사삼월이십오일오시입주상량. 1809년, 조선 순조9년)’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를 입증한다.

교회 건물은 정면 4칸×측면 2칸의 한옥구조이며 건물 내의 바닥은 목재 마루이고 천정은 석가래가 바로 보이는 ‘연등천정’이다. 장방형 남향으로 지은 이 건물은 오래되어 기와가 낡아 비가 새고 지붕에서 잡초가 돋아나 2005년경 요즘의 기와로 교체했다.

당시에는 남녀의 유별 사상으로 남자와 여자가 구별되어 예배를 드렸다고 하며 지금도 당시에 쓰던 놋종, 의자, 강대상 등 교회 성구들이 일부 남아있다.

특히 교회 담임자인 김형욱 목사님이 역사의식이 뚜렷한 분이라 교회비품 뿐만 아니라 사진자료와 서책을 비롯한 각종 기기들을 철저하게 수집, 보관하고 있어 울진지역의 교회사 연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행곡교회는 울진지역에서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침례교회로서는 6번째로 일찍 세워진 교회인데 단순히 교회가 오래되었다는 의미뿐 아니라 순교자를 배출한 성지로서의 의미가 더욱 값지다. 한국 침례교단이 태동한 이래 총 21명의 순교자가 나왔는데 그중 3명이 행곡교회 출신이다.

행곡리 출신인 전치규 목사는 1944년 12월13일 일본군에 의해 함흥감옥에서 66세의 나이에 고문으로 순교하였고, 전병무 목사와 남석천 성도는 1949년 10월7일 지역에서 활동하던 공산당에 의해 순교하였다. 따라서 이 교회를 한국 침례교의 성지라 하여 ‘동해안의 예루살렘 교회’로 부르고 있다. 또한 시골의 작은 교회이지만 35명의 목회자를 배출한 유서 깊은 교회로도 이름나 있다.

지금은 1983년 건물 서측에 새 교회를 지어 이곳에서 예배를 보고 있으며, 옛 교회건물은 교육관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2006년 12월 근대문화유산 제268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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