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영계곡으로 올라가는 초입에 근남면 행곡리 '쌀구'라는 마을이 있다. 본래는 '쌀구'가 아니라 '쌀이 나오는 창고'라 하여 '쌀고(米庫)'라 하였는데 그 유래가 재미있다.
이 마을의 서쪽 뒷산은 큰 바윗돌들이 벼랑을 이루고 있는데, 바윗돌 앞에 자그마한 암자가 하나 있었다. 바위산 벼랑 중간쯤에 돌로 축대를 쌓고 6~7평 정도의 평지를 만들어 그 위에 암자를 지었는데 이곳이 '천량암(天糧庵)'이다. 이 암자에는 신라시대 선종의 효시였던 유명한 고승, 원효스님이 수도했다고 전한다.


암자 뒤편에는 높이 30미터 정도의 커다란 바위가 쌍봉을 이루고 있고 그 왼쪽 바위 중턱에 바위굴이 있다. 굴의 깊이는 1.5미터, 굴 높이는 0.8미터, 폭은 1.2미터 정도로 옴폭하게 패여 있다.
이 바위 구멍에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스님이 먹을 만큼 두어 됫박 쯤되는 쌀이 나왔는데 나중에 어느 가난한 스님이 이곳에 와서 쌀을 좀 더 많이 나오게 하려고 구멍을 크게 팠더니 그때부터 쌀이 나오지 않았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이 마을 지명이 '쌀고'가 되었다고 한다.

조선 중종 25년에(1530) 완성된「신증동국 여지승람」울진 불자조(佛字條)에 아래와 같은 기록이 있다. 천량암 재 백련산휘전원효 주시암석간유혈산미고명(天糧菴 在 白蓮山諱傳元曉 住時岩石間有穴産米故名), 이를 해석하면 '천량암은 백련산에 있는데 원효대사가 주거한 암자로 전한다. 이곳 바위에 구멍이 있어 쌀이 나오므로 천량암이라 한다.'

또 융희2년(1909) 울진군수 '유한용'이 조정에 보고한「울진군 여지약론(與地略論)」에도 다음과 같이 소개 되어있다. '천량암은 읍내 소재지로부터 서쪽으로 40리, 백련봉(白蓮峯) 동남쪽의 창벽간(蒼壁間)에 있으며 석실이 있고 원효대사가 수도했다고 전하는 암자가 있다. 물도 있는데 이 돌구멍에서 아침 저녁으로 두되 정도 쌀이 나오기 때문에 이 마을을 미고(米庫)라 했다, 원효대사 이후 어느 빈승(貧僧)이 왔는데 쌀이 많이 나오도록 하기위해 구멍을 크게 파자 쌀이 나오는 것이 끊어졌다.'

임유후의 주천대(酒泉坮) 기(記)에서는 "주천대가 있는 이 마을의 이름은 쌀고(米庫)라 하는데 옛적에 이 마을 북쪽 산위에 천량암(天糧庵)이라는 암자가 있어 원효대사가 수도했다 하는데, 전설에 의하면 그 암자 옆에 있는 돌 바위틈에서 매일 조석으로 한 되 가량의 쌀이 나왔다고 하여 암자 이름을 하늘이 '양식을 대주는 암자'라 하여 '천량암'이라 부르게 되었고, 따라서 동명을 '쌀 나오는 곡간'이라 하여 '쌀고(米庫)'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쌀고'가 변하여 '살구'가 되었고 마을 이름을 한자식으로 고칠 때 '살구'를 먹는 과일로 생각했던지 '살구나무 행(杏)'자를 써서 오늘날 '행곡(杏谷)'으로 변하였다.
신 울진군지 승지편에도 아래와 같이 천량암(天糧岩) 소개되어 있다. '근남면 행곡리 천전동 검각봉(鈐閣峯)이 있는데 신라 때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수도하면서 석실(石室)에 암자를 세우고 있는 동안 쌀이 돌구멍에서 조석으로 나왔다 하여 천량암(天糧岩)이라 하고 동네 이름도 미고(米庫)라 하였다. 그러나 원효대사가 떠난 후 가난한 중이 와서 쌀구멍을 넓게 팠더니 쌀이 나오지 않았다'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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