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인생을 다시 한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고 니체가 풍선에 바람 넣듯 자꾸만 넣어줍니다.

귀농 전같았으면 '좋은 말이군'하는 반응으로 끝장냈겠지만 울진의 산자락에 들어와 사는 지금은 니체 말마따나 이 인생을 다시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목에 핏대 세우며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물위를 걷는 게 기적이 아니라 그게 바로 기적입니다.

애시당초 당신에게 이 정도로 길게 읊을 생각은 없었는데 말 나온 김에 속내를 드러내 봅니다. 며칠 전에, 당신은 바닷가에 잠깐 다녀온다고 하였지요.

그때 저는 속으로 '드디어 귀농하더니 영혼에 파스텔물을 들이려나 보다' 생각하고는 다음 말을 기다렸습니다.

"이번에 한봉이(초보농사꾼의 친구)가 준 스킨스쿠버 장비를 테스트해 보고 해야 되서......''라며 문맥도 맞지 않게 얼버무리더군요.

왜 당신이 말꼬리를 흐리는지 난 압니다.
'고양이 손도 빌린다는 바쁜 추수철에 농사꾼이 무슨 호사스럽게 스킨스쿠버냐'는 마음을 내가 먹을까 그게 마음 쓰였던 거지요. 귀농 몇 년차인데 그 정도 꿰뚫는 것이야 식은 죽 먹기지요.

여하튼 난 당신이 미안해하는 마음을 압니다. 그러나 그건 미안해 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귀농하고 당신은 가장으로서 '최선'이었습니다.

내가 이 '최선'이라는 것은 남들이 말하는 금전적 결과, 눈에 보이는 삐까번쩍한 것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처음 귀농하자 했을 때 속으로 '골이 비어도 한참 비었다'고 생각했지요. 그렇게 앙칼지게 귀농을 반대하다 당신을 따라온 내게 당신은 한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었습니다.

당신으로서 '최선'이었으면 결과물의 꼬라지가 꾀재재하더라도 내 눈에는 다이아몬드 이상입니다.
잔정 없는 사람이 내가 귀농하고 사람들에게 상처받아 쓸개즙을 먹은 것처럼 씁쓸해 할 때,  당신은 말주변 없는 성격에 뭐라뭐라 오물거리며 나를 위로했지요.

갓난아이의 옹알이처럼 들리는 그 오물거림은 내가 낯선 이 울진에 뿌리내리는데 버팀목이 되어 주었습니다.

귀농 전, 가훈이 '폼생폼사'라고 웃으며 나 몰래 모터보트를 사서 주인 기다리는 개처럼 절절이 주말만 기다리던 당신이었습니다. 산이 부른다며 환청들린 사람처럼 주말이면 암벽에 낙지처럼 들러 붙어 기어오르던 당신이었습니다.

그러다 귀농하고는 꿈에서도 모터보트를 타보지 못했고, 단 한번도 산에 간 적이 없었지요.
왜 그 절절해 하던 것을 하지 않느냐는 말을 하면 "산에 사는데 뭐 따로 산에 가라고 웃었지만 난 압니다.(내가 통박 하나는 잘 굴리잖아요.)

그렇게 산을 싸돌아 다닐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낯선 곳으로 귀농하자고 온 가족 데리고 온 주동자로서, 멀쩡히 다니던 직장에 사표 내던지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택한 가장으로서 그런 것을 즐길 여유가 없었겠지요.

폐일언하고, 가장이라는 완장을 찬 사람으로서 귀농 10년 동안 아이들과 제게 최선의 모습을 보여준 당신은 우리 눈에는 체게바라 다음 가는 혁명가이고(귀농이 혁명 아니고 뭐겠습니까.) 영웅입니다.

저와 아이들이 어미닭 날개 속에 들어 있는, 막 알을 까고 나온 병아리처럼 당신의 날개와 그늘 아래서 푸근한 시간을 보낼 동안 당신은 이 연고도 없는 울진에서 그 날개를 건사하느라 손이 곰발바닥처럼 되었지요.

그런 당신이 바닷가에서 귀농 전을 떠올리며 스킨 스쿠버 한번 한다는데 누가 거기에 테클을 걸까요. 오히려 늦은 감이 있을 뿐입니다.

귀농 전에 사둔 그 모터보트를 산골로 가져왔었지요.
그때는 사는 곳이 오두막이라 놓을 곳이 없어서 하우스에서 다시 밭 언저리에 갑바를 덮어 두었는데 다 삭아버려 보트는 버리고 모터와 나머지만 남았지요.

언젠가 마음이 바다를 부르는 날 모터보트 싣고 바다에 가리라 생각했겠지만 농사 일이 바쁜 당신은 마음이 불러도 못갔을 거라는 걸 나는 알지요.

서론이 길었습니다. 그렇게 고작 두어 시간 바닷물에 몸 담그고 와서는 그 장비며 슈트를 데크 난간에 널었더군요. 생전 안오던 비가 오느라 그것들은 마르지 않았습니다.

집에 들여다 놓으라고 해도 당신은 괜찮다는 말만 하고 밭으로 갔지요. 집안에 있는대로 깔아놓는 것이 내키지 않았겠지요.

당신이 밭으로 간 사이 이 검은 물건(?)들을 털어 바닷모래를 제거한 다음 거실에서 제일 빛이 잘 들이닥치는 곳에 널었습니다. 이제 곧 신생아 솜털처럼 뽀송뽀송해질 것입니다.

앞으로도 바다가 그리우면 슈트 가방 들고 다녀 오십시요.
'열심히 일한 당신'에게 그건 사치가 아닙니다.

나에게 버벅거리며 이유를 댈 필요도 없습니다.(그런데 이거 걱정이 드네요. 인간이 갑자기 변하면 숟가락 놓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거라는데 ...내가 너무 급속도로 변하는 것은 아닌지..^^)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알아준다는 것, 그것은 거실에 널린 슈트처럼 마음을 뽀송뽀송하게 해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부란 무엇입니까.

서로의 마음이 젖어 있을 때, 손부채를 팔이 빠지도록 휘둘러 서로의 마음을 뽀송뽀송하게 말려주는 것이지요.

오늘도 생전 해보지도 않은 농사일 하느라 손에 못이 박히도록 열심히 일한 당신에게 골뱅이 무침을 준비해야겠습니다. 물론 소주는 기본이구요.

그럼 이따가 만나요.

난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물건들을 한번 더 뒤집어 놓아야겠습니다.

저작권자 © 울진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