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행차하기 전, 호롱불 마냥 별 하나가 먼저 나와 다른 별들의 길을 터놓는다.

그러면 다른 별들이 팝콘터지듯 이내 하늘에 삐져 나온다.

그것을 보며 인생사에도 다른 이의 등대가 되어 주는 사람이 있음을 생각해 본다.

그것을 보며 건조하고 뻑뻑하게 돌아가는 인생사에도 사람 사이에 녹슬지 않고 잘 돌아가도록 구리스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는 등대 역할도, 구리스같은 역할도 제대로 못하는 것같아 마중별을 보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재작년 봄에 남천이라는 묘목을 사다 심었다. 사실 우리 부부는 연식이 좀 된 좋은 묘목을 비싼 값에 덥석 하지 못하고 어린 묘목을 싼 값에 사서 키워본다고 용을 쓰는 성격이다.

미리 밝혀 두지만 그렇다고 묘목 키우는데 일가견이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뭣도 모르면서 의기탱천할 뿐이다.

남천 뿐만 아니라 다른 묘목을 심어 보아도 어린 묘목은 추운 산골에서 살아남는 일이 쉽지 않았고, 살아 남는 놈보다 죽어 자빠지는 놈들이 많았었다.

그때는 '다시는 어린 묘목을 싸다는 이유로 사지 않을테다'하고 두 손 불끈 쥐지만 이내 겨울이 가고 봄이 되면 또 싼 것에 눈이 훽까닥 돌아가 어린 묘목을 사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남천 만큼은 의기탱천하여 좀 비용을 치르고 제법 영글은 놈으로 샀다.

그렇다는 것은 남천에 많은 것을 건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언니가 가을이면 단풍도 들고, 겨울이면 빨간 열매가 얼마나 이쁜지 모른다며 숨넘어가도록 남천, 남천 노래를 부르며 추천하기에 열 모종을 사서 띄엄띄엄 길다란 꽃밭을 둘러싸도록 자리를 잡아 주었다.

한겨울 눈 속에서도 빨간 열매가 죽여준다는 말에 혹했다고 보면 됀다.

봄에 제때제때 비가 와주어 물을 줘야 하는 수고로움은 없었으나 혹여 비가 자주 오다보니 막 시집와서 자리텃을 하는 남천 뿌리가 썩지 않을까 노심초사였다.

그러나 나의 근심이 쓸데없는 것임을 입증이라도 하듯 푸르른 잎을 팔랑이며 바람과 놀아나는 시간이 많아지더니 점점 잎이 풍성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가을이 되니 얼굴에 발그레한 볼터치를 한 것처럼 단풍까기 드니 이제는 산골의 또 다른 가족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했다.

산골의 겨울이야 두 말 하면 입아프다.

강추위에, 뒤로 자빠질 정도로 내리는 눈까지..

그렇다 하더라도 봄이 되면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듯이' 꽃밭에 입점해 있던 각종 꽃들은 파리한 새싹을 어김없이 내밀었기 때문에 남천이라고 별다를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허리까지 쌓인 눈이 녹고, 개울의 얼음도 녹아 제 목청을 높이는 시절이 되어 너도나도 신생아 새끼 손톱만한 싹을 내밀 때가 되어도 내가 공들인 남천에게는 어떤 반응도 없었다.

봄이라고 일제히 초록의 띠를 두르고 일제히 싹을 내미는 것은 아니다.

이른 봄에 촉싹거리며 성급히 손자락을 내미는 놈도 있지만, '그래 어디 다 나와봐라!' 라며 늦장을 부리는 대추나무 싹도 있으니 그 둘 중의 어디 중간쯤의 시기에 남천의 싹도 나를 감동시키리라 믿었다.

그러나 산골에서 제일 게으르다는 대추나무 싹이 나오고 내가 심은 야콘의 싹이 나오는 6월이 되어서도 남천은 나무 토막만 뻘쭘히 세우고 쥐죽은 듯 서 있었다.

어느 날 망설이다가 나무의 끄트머리를 조금 분질러 보니 뚝뚝 장작부러지듯 부저질 뿐 부러진 나무 속에 푸르름이란 눈씻고 봐도 없었다.

'산골의 추위에는 견디지 못하는 것이 남천이구나.' 라는 결론을 내리고 멀대처럼 서있는 죽은 묘목을 뽑아버렸다.

그리고 잊었다.

잊은 동안 꽃밭은 다른 꽃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끊이지 않고 피느라 진통소리 또한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1월이 되어 꽃이 지고 잎이 지고 모두가 스러진 꽃밭은 폐허처럼 을씨년스러웠다.

이제 죽은 넝쿨을 걷으려고 꽃밭에 들어서니 파릇한 새싹이 소복이 올라온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너 남천 아니니?"

맞았다. 남천이다.

작년의 묘목은 몸살을 앓다가 죽고 그 아래의 뿌리에서 새로 싹이 올라와 손바닥 벌린 만큼의 키를 키운 것이다.

미친 듯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환생(?)한 남천을 더 찾으려 기를 썼다.

작고 째진 눈을 있는대로 크게 뜨고 찾아나선 결과 세 그루를 건졌다.

성질 급한 마음에 잡아 뽑은 일곱 그루는 흔적 없이 사라졌고, 그나마 재수가 좋아 머리채를 잡히지 않은 녀석만 환생한 것이다.

한 해 더 지켜보는 인내를 보이지 못하고는 조바심을 내어 귀한 생명을 골로 보낸 것이다.

지난 폭설로 다 뒤덮였던 남천이 걱정이 되었었다.

아직 어린데 이 두꺼운 눈이불을 덮었으니 살아남을까..

눈이 녹자마자 마당에 달려가보니 갓 세수한 맑은 모습으로 아는체를 한다.

어찌나 고마운지 저 멀리에 자리잡고 계신 벤자민(그레이 하운드종)의 배설물을 부삽으로 퍼서 남천의 발 위에 올리고 언 땅을 박박 긁어 흙을 덮어주었다.

남천으로 인해 기다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았다.

사람은 생명 붙은 것을 대할 때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도 알았다.

"올 겨울 잘 나고 새봄에는 더 키를 키워 빨간 열매까지 몸에 달고 서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라고 말하고 보니 이거 콩밭에서 두부찾는 격 아닌가.

인간의 욕심이란...

이내 멘트를 수정했다.

"하여간 너나 나나 겨울을 잘 나고 봄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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