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층 한글 가르치는 기성리 등불학교 입학식 풍경

못 배운 서러움을 그나마 달랠 수 있는 등불교실을 통해 이름이라도 쓸 수만 있다면야 얼마나 다행이고 기쁠까! 그 기대감을 가지고 모여든 장수마을로 소문난 기성리 동회관에는 할머니입학생들로 시끌벅적하다. 입학식 날 첫 수업이라 책가방과 교재를 나누어 주는 시간부터 분주하다.

- 지우개는 들안네 요거가 두나가 책이 없고 연필은 두나있고 필통도 없는 같네.

- 할매네들도 공부 할란동 물어볼라(방 안에 계시던 고참할매들을 가르키는 말이다.)

- 연필은 두나있네. 딴거도 챙게주게. 마커다 있는데 내만 없네 글씨.

- 모하요 뻐이 와있니 한자래도 배와봐 고마. 배와 남준가.

- 남 배울찌게 뻐이 앉았니 가하던동 나하던동 따라 써보미시로.

- 모로? 앉아 노는기지. 어느 세월에 배울란동(공부에 취미 없는 할매다)

- 이 판오 딴거로 바까 놔조라. 파이 찌불다.

- 지우개든 가바이던 이름이 안써에 있으이 지가 알아서 지이름 써야지야.

- 책에도 지이름 함부래 써나. 디리 섞일라.

- 지우개는 왜 한나 가지노? 이 책가바는?(자기 활당은 악착 같이 살핀다)

- 옆으로 쫌 비애주소 앉거로.(늦게 온 할매 챙긴다)

- 책 페이지도 못 찾아 해매는 할매들은 분간오 못 차린다.

- 야야 불오좀 써라. 어다 글이 한 개도 안보이네.

- 이 할마이 보래. 고대로 따라 기래라 하이꺼네 엉뚱한데로 가네야. 줄오 따라 쪽바리 기래라.

- 시키는거만 먼저 썰라. 쫌 안다꼬 자꾸 앞서 가지 말고.

- 야들아 떠드는 소리에 하나도 못 들을따 저좀 보소 선새이 지낀거.

- 요글자하고 요글자하고 똑같제? 고래 줄오 연결 시케라말따.(잘 가리킨다. 한 할매)

- 야들아 봐라 내 엉가 잘 썼제?

- 그거 잘못 썼네. 지우게로 지우고 다시 쓸라.

- 모로 지우노.

- 오와야 지우게로 쥐고 있어 머사야 참말로(사실 새 것이라 비닐이 덮여 있는 줄도 모르고 먼저 살짝 문질러 본 할매다)

- 이거는 까무데야 되겠다 내가 봐도 지랄로 쓰엤네 하하하...!

- 평사 글오 안쓰다 쓰꺼네 씨지는가 오데.

- 오늘 진지내로 계속 써라 그럼 는다. - 보래 경화야. 나로 지우개로 한 개 도가(선생님오 잘 아는 동네 엄마라고 선생님 이름 막 불러대신다. 아무래도 괜찮다 다들에게 딸인데 뭐!)

글을 못 배워 서러운 분이나 좀 배워 아는 분이나 모두가 초등학교1학년 입학생이다. 그저 흥분되고 신기하고 새삼스럽고 재미날 뿐이다. 할머니 학생들께서 배우시는 한자 한자에 행복과 건강이 소복소복 베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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