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두고 나이꺼네 속이 다 후련해"

행정 업무의 최전선에서 마을의 온갖 대소사를 책임지는가 하면, 동네숙원사업의 해결을 위해 불철주야 힘썼던 울진읍 호월1리(무월동) 장일균(長一均 80세) 이장.

1969년 35세의 나이에 동네 이장을 맡아 43년간 '최장수 이장'이라는 호칭에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온 '영원한 이장' 장일균씨가 현직을 그만둔지도 1년이 넘었다.

"말마시소. 잘했던 못 했던 그만 두고 나이꺼네 속이 후련하고 만개 핀니더."

쌀쌀한 겨울 날씨를 뒤로한 채 툇마루와 함께 마당에는 따스한 햇볕이 드리우는 가운데 안방에서는 장씨 노부부가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정겹게 화투 패를 띠고 있었다.

"2010년도에 그만 두려 했지만 시시만큼 누구도 안한다하니 동네 사람들이 죄다 한 번 더 하라고 조르는 판에 어쩔 수 없이 한 해 더하고, 작년 2월에 그만 뒀잖니껴! 정말 속이 시원하니더."라며 미소를 지으신다.

장씨는 현재 호월1리 노인회장과 울진장씨 직장공파문중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나름 바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부인과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

"말 마소 옛날에 간날에는 마실이나 읍내에 볼 일 보러 나갔다 하면 며칠씩 함흥차사고 나락 묶다가도 휭하니 어디로 가버리면 혼자 일오 다 했지요!"

부인 남순자(76세)할머니는 "내가 그만큼 받들었기 때문에 그만큼 이장 일을 했으니 사실 내가 다 한거나 마찬가지시더."하며 43년의 내조를 자랑하자 장씨가 파안대소한다.

장씨는 "참말로 다른 것은 몰라도 옛날에는 행정에서 농약을 외상으로 배정해 주는데, 팔리든지 안 팔리든지 무조건 이장이 처분을 해야 했기에 거기에 손해를 많이 봤지요."라며 "그것이 사실 최고로 고생 많았던 사연으로 남는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살면서 젊을 때 돈을 못 벌어 놨다며 걱정하시는 노부부의 뒤에는 2남4녀의 든든한 자식들이 각지에서 지켜보며 무탈하게 생활해 나가는 것이 위안 일 것이다.

이장을 맡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하던 새마을운동이 활발해질 때, 정부에서 지원해준 시멘트로 부역이란 이름으로 집집마다 한 사람씩 공사현장에 불려나와 공짜 품을 팔아야만 했던 시절을 상기하는 장씨의 어깨엔 훈장이 하나 달려 있는 듯하다.

최첨단으로 달리는 현 장비들에 비해 그 당시엔 삽과 괭이, 리어카, 대야가 전부였던 시절 300원의 수당으로 마을을 이끌었던 장씨의 세월은 아련하게 떠오를 뿐이다. 1983년 전두환 민주정의당 총재로부터 받은 중앙정치연수원 제1차 제74기 교육과정을 수료해 받은 수료증과 1998년 우수한 농지관리위원으로 김성훈 농림부장관으로부터 받은 표창장이 방 벽에 걸려 있음이 그의 역사를 대변한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묵묵히 고래심줄 같은 뚝심으로 43년이란 긴 세월을 동네를 위해 살아온 '영원한 이장' 장일균 어르신은 어려운 시절 지역을 위해 아낌없이 봉사한 인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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