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 되니 개울의 옹알이 소리도 제법 여물어졌다. 바람도 칙칙한 옷을 한 겹 벗어던졌는지 날렵해 보이고, 바람이 늘 놀다 휘젓고 간 숲도 그 때깔을 달리하고 있다. 그리 잘 나가다가 눈이 온다.어제도 오고, 성이 덜 찼는지 오늘도 같은 속도로 내리 꽂히고 있다.그 눈이 숲에 앉으면 숲이 되고, 밭으로 제 갈 길을 정하면 밭이 된다. 호수밭 웅덩이에 앉으면
오늘은 꿀밤 창고라 할 수 있는 나만의 비밀장소에 밀가루 포대를 들고 이슬 깔린 황토백이 누런 콩밭길을 쉼 없이 달린다.옛날 도사들은 축지법을 썻다고 한다. 축지법은 칠성보법에서 대축과 소축으로 분리되고 대축은 북두칠성 관음자리인 중간 별자리를 걸음걸이 첫발 순서로 표시하여 순서에 맞추어 호흡을 가다듬고(심호흡) 단걸음에 뛰면 된다는데... 항
그때는 그랬었다.이번 방학은 설을 지나고 몇일 여유가 더 있어서 다행이지만 밀린 방학숙제가 걱정이다.매몰찬 겨울바람이 문풍지를 울리면 단풍잎을 말려 붙인 문고리 밑 유리사이로 김이 서린다. 아직도 온기가 남은 방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방학숙제를 하다보니 밖이 웅성거린다.“안에 아무도 없니껴?”신림에 계신 어떤 아줌마가 노란 싹이 이쁘게 올라온 탐스러운 무우를
후포항 가는 옛길에 위치한 대구식당을 찾았다.20년간 대구와 복어 등 고급어종을 주 메뉴로 고집해 온 대구식당은 많은 단골을 확보하고 있는 식당이지만, 식당 내부는 옛 모습 그대로다.식당에 들어서자 후포면 금음리가 고향이라는 강연옥(50세) 사장이 반갑게 맞아준다.대구식당의 대구는 대구(大邱)광역시의 대구가 아니라 동해의 명물 대구(大口)의 대구를 말한다.
베트남의 속담에 “다정하게 말하는 것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당연한 말 같지만 현실은 멀기만 하다. 일전에 목욕을 갔을 때의 일이다. 도시에서와는 달리 산골로 와서는 발을 발로 취급하고 신경을 안 썼더니 겨울엔 터지고 피가 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목욕 온 참에 발뒤꿈치를 밀려니 밀개를 안 챙겨 온 것. 용기를 내어 입가에 잔뜩 미소를 달
울진군 식당허가 제1호는 올해로 34년이 되는 울진읍 삼오정 식당이다.삼오정 식당은 장석헌(80세)씨가 1968년 공세항 가는 길목에 있던 방앗간 뒤편에서 한식집으로 개업하여 1973년에 현 위치로 옮긴 후 2대 점주 김상찬씨가 1987년부터 현재까지 운영해오고 있다.삼오정 식당은 한식전문점으로 역사만큼 소문도 많이 나 웬만한 관광안내 책자엔 빠지지 않는
오늘은 마실을 갔었다. 바람이 세찼지만 마음 한 켠에 뭉클함이 있어 꽃버선 신고 나섰다. 오두막에서 멀지 않은 곳 개울가. 지난 여름 태풍 루사가 왔을 때 간도 크게 강이 되어버렸던 그 개울가. 지금은 기가 죽어 겨우 숨만 쉬고 있다. 그 곳에 쭈구리고 앉아 그의 소리를 들어주기만 했다. 사는 동안 듣기보다는 말하기를 두 배로 했던 자신이 기형임을 이제사
그때는 그랬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어렵게 구한 잰마이(벽시계 태엽)로 만든 외발 시겟또를, 힘들게 만든 긴 송곳 끝에 끼워서 어깨에 메고 황토배기로 간다. 황토배기에는 욕쟁이할배 농장이 있는데 얼마 전 불이 나서 염소와 닭이 바베큐가 된 사건이 벌어져 철테가 달린 함석 바케스와 물지개로 우리가 불을 끄러 갔던 곳이기도 하다. 그 때 어떤 사람은 불에
월변 다리밑에 아줌마들의 빨래방망이 소리가 오늘도 변함없는데 새우젓장사아저씨는 오늘도 당구바지에 디스코형 지게를 용호네 판자 울타리 앞에 세워놓고 가죽 담배쌈지에서 마도로스 담배 빨뿌리를 꺼내 엄지손가락으로 조심스레 담배를 꽉꽉 눌러 담는다. 그 폼세가 꼭 후크 해적선장 같은데 혹시 저 아저씨가 간첩은 아닐까? 갑자기 아저씨의 정체가 의심스럽다. 용호네 판
"만드는 비법보다 정성이 우선이지요"후포 부둣가 앞에서 11년째 냉면과 곰탕을 전문으로 요리해 내는 곰보식당이 후포사람들은 물론이고 외지에서 정박한 선원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해 찾아보았다.깔끔하게 꾸며진 40평쯤 돼 보이는 식당은 점심을 먹기 위해 찾아온 손님들로 시끌벅적하다. 손님들끼리의 대화에 간혹 다른 지방 사투리가 섞여 들리는 것을 보
바람이 없는 날 밭에서 일하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에도 물기가 말라 허기를 느낀다. 잠시 오두막으로 내려와 냉수 한 대접 들이키니 지금이 겨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내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산으로 도망을 갔던 닭들이 돈이 떨어졌는지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더군다나 암수가 나란히 야반도주, 아니 대낮도주(닭은 야맹증이 있으니..)를 했으니 내 눈이 더
그때는 그랬었다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바로 수학여행을 가는 날인 것이다. 사방이 깜깜한 밤에 그것도 벼를 베어낸 그루터기에 살얼음이 살짝 끼어 어쩌면 오히려 더 추운 날이다.이밥에 계란 삶아 얹은 도시락과 볶음반찬. 조금은 낡았지만 깨끗하게 세탁한 호크가 달린 고리땡 바지와 저고리에 약간은 흥분된 기분으로 새 낙하산양발을 신고 끈 달린 검정색 운동화에 차가
“게이트볼로 건강하게 삽니다”겨울을 알리는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11월이지만 연호정가에 위치한 울진읍게이트볼장에는 아침 일찍부터 게이트볼을 즐기는 노인들로 활기가 넘친다.2개 코트가 갖추어진 이 곳에서 매일 아침 9시와 오후 2시30분이면 어김없이 게이트볼에 열중하는 노인들을 쉽게 만나 볼 수 있다.공과 스틱, 작은 문(게이트), 그리고 골폴(
'이제 초등학생까지??' 바람이 이리도 차가울 수가 없다. 한겨울을 오두막에서 견디게 하기 위해 혹독한 초겨울을 나게 하는 자연의 배려에 군말 않고 찬기를 받아들인다. 겨울로 가는 길목이라 그런지 오두막 주위가 을씨년스럽다. 내년 봄에는 산수유나무도 심고, 이곳에 될지 모르지만 매화나무도 심고 싶다. 세월의 흔적이 짙은 오두막일지라도 그 주위에 자리잡고 있
지난 8월 비가 내린 가운데 진행된 백암온천제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지역을 위해 봉사해 주민들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았던 온정면 청년회를 찾았다.청년회원들은 온천제를 각자 나름대로 결산해보고 다가올 온정면 직장인체육대회개최를 위한 논의가 한창이었다. 정병렬 회장을 비롯한 20여명의 이사진들의 자세가 무척이나 진지하다.정회장은 “온정면청년회는 훌륭한 선배들의
진짜 타이야표 검정고무신수산 모랭이를 돌면서 하얀 신작로에 뽀얀 먼지를 날리면서 영화여객 버스가 토일 곧은 길을 숨을 헉헉거리며 달려온다. 덜컹덜컹쿵 도대체 저 차는 저렇게 엉덩이를 흔들면서 다녀도 부셔지지 않는 다니 정말 튼튼하게도 만들었나보다.새벽 4시에 버스를 타면 대구까지 7시간. 엉덩이가 얼얼하고 정신은 오락가락. 울진사람은 대구 가서 수도꼭지 물
나에게는 언니가 넷에다 오빠가 있다. 큰언니는 거의 `엄마마침'(이 말은 우리 배씨 일가만 쓰는 충청도용어인듯 한데 확실히 파악할 수 없음)이다. 태어날 때부터 그릇 큰 장녀다보니 나머지 아가들은 큰언니 말이면 엄마 말씀과 동일시하여 복종을 하며 자라다보니 언니에게선 늘 과꽃냄새가 났다. 막내인 나 다음으로 태어난 아이가 큰언니의 큰아들인 구민이. 그랬으니
태풍이 지나가고 나니 이어서 가을바람이 산골로 들이닥쳤다. 계절이 바뀔라치면 하다 못해 전주곡이라도 울려 주고 메인 게임이 시작되어야 하는데 여름의 끝자락을 붙잡고는 마무리를 하려는 순간도 주지 않고 그답 가을바람이 산골을 차지해 버린 거다. 그러니 여름 끝도 아니고 가을도 아닌, 사람으로 치자면 좀 덜떨어진 사람처럼 어정쩡한 날이 계속되고 있다. 모든 것
"수중생태보호, 인명구조..." - 물 속 봉사활동에 최선을 다한다스킨스쿠버는 일부계층에서만 즐기는 고급스포츠로 알려져 왔으나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점차 대중화가 되어가고 있다.1982년도 10명의 회원으로 결성된 스킨스쿠버 동호회인 딥다이버클럽(회장 장헌국, 38세)은 20년의 역사가 말해주듯 울진의 대표적인 클럽이라 할 수 있다.딥다이버클럽은 취미활동을
산골에 비비린내가 가시지도 않았는데 또 비가 온다. 사람이 맞은데 또 맞으면 아픔이 배가되듯이 비맞은 상처에 또 다시 비를 맞는 논이며 밭이 안스러운 그런 밤이다. 불켜진 방으로 기를 쓰고 들어오려는 나방의 몸부림 소리가 빗소리 속으로 희석된다. 비오는 날에는 마음이 너그러워져 나방을 방에 들이고 싶은 충동이 일지만 들어와서 사람의 정신을 건드리고 다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