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영유권 문제는 한일 간에 오래전부터 분쟁의 불씨가 되어왔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정부차원의 대응방안을 강구하겠지만, 이는 우리나라 전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대응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독도 분쟁의 해결은 문헌적 기록만으로 대응할 문제가 아니다. 실질적으로 지배한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물적 증거가 확보되어야만 강력히 대응할 수 있다. 조선시대 독도를 포
우리나라에는 예부터 경치 좋은 곳마다 정자를 지어 선비들이 학문을 논하며 풍류를 즐겼다. 울진에도 관동팔경으로 유명한 망양정, 월송정이 있지만 그 외에도 많은 정자들이 있었는데 그 중 울진 읍내리 월변동 송림 속에 '취운루'가 있었다.취운루(翠雲樓)라는 뜻을 직역하면 "솔 그늘 아래 누워 구름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물총새 지저귐을 듣는다"
다가온 2012년에 제가 바라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 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별거 아니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하루를 무사히 보낸다는 게 `참 힘든거구나'라고 요즘 많이 느낍니다.얼마 전에 차사고가 났었습니다. 쾅하고 박는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들더군요. 한동안 얼굴에 시퍼런 멍이 든 상태로 다녔습니다. 차가 많
울진군 서면 하원리에 위치한 불영사에는 '인현왕후 원당'이 있고 경내 입구, 오른쪽으로 40m지점에는 커다란 부도 1기가 있다.부도(浮屠)는 본래 승려의 묘탑(墓塔)을 말하는 것으로 부처님의 사리를 안치한 석물이 불탑(佛塔)이라면, 스님들의 유골이나 사리를 보관한 묘탑이 부도(浮屠)이다.부도는 그 절에 수도하시던 주지스님들이 입적하면 다비장 (茶毘葬)을
울진에는 젖줄로 불리우는 왕피천(王避川)이 있고 서면에는 왕피리(王避里)라는 마을이 있다. 이렇듯 '왕피'라는 지명이 쓰이는데 그 근원은 무엇일까? 흔히 구전되는 얘기로는 옛날 왕이 피신해 왔다는 데서 그 유래를 찾는다. 그렇다면 정말 왕이 이곳으로 피신해 왔을까? 또 그 왕은 누구일까? 이에 대해 여러 가지 구전 설화가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역사적으로
울진읍 고성리 가원동(속칭 가만동)에 월계서원이 있다. 본래 월계서원은 1856년 울진읍 무월동에 월계사(月溪祠)라는 이름으로 지어져서 문성공(文成公) 장말익(張末翼)선생과 장량수 선생을 함께 배향하였다. 그후 서원을 찾는 사림(士林)들이 점점 늘어나자 1862년에는 '월계서원'으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조선후기 대원군 집정 후 전국적으로 서원철폐령을 내
짧은 앞창모자에 붉으테를 두르고 등에 땀이 흠벅젖은체 붉고 큰 가죽가방을 빨간색 자전거 핸들에 걸친 우체부 아저씨가 나타나면, 행여 우리집 사립문 앞에 멈추기를 기다리며 가슴 졸이든 시절. 물푸레나무와 싸리나무를 섞어서 나무와 나무를 맞대고 칡넝쿨로 단단히 동여맨 반쯤 삭은 울타리엔 벌거벗은 알몸으로 가을 햇살에 일광욕하며 사립문을 지키는 누런 호박이 요염
이 철비들은 선질꾼들의 안전한 상행위를 위해 도와준, 당시 봉화 내성(乃城)에 살고 있던 접장 정한조(鄭韓祚)와 반수(班首)인 안동사람 권재만(權在萬)에 대해 그 은공을 기리기 위하여 보부상들이 세운 비이다. 이 철비는 1995년 6월30일 문화재자료 제310호로 지정되었다.
한수원과 울진원자력본부의 일방적인 행태가 지역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한다는 성토장이 될 우려를 낳고 있다. 울진원자력본부는 11월8일 5기 울진원전민간환경감시위원회 출범과 동시에 울진원전의 현안인 ‘4호기 증기발생기 정비와 관련한 계획예방정비 기간 연장과 유리화설비 처리대상 호기 확대 적용’에 대해 설명회를 가졌다. 그러나 울진원전의
10월20일 영주에서 개최된 경북풍물대축제를 다녀왔다. 7시30분 울진문화원 주차장에서 출발, 단풍으로 곱게 물들어가는 불영사계곡으로 차량은 아침 공기를 가르며 나아갔다. 버스 안은 출발과 동시에 흥겨운 노래가락으로 분위기를 돋운다. 일행들의 박수소리가 이어지며 흥을 일으킨다. 추수철이 겹치지만 바쁜 일상을 잠시 벗어나는 하루를 일탈하는 수학여행가는 기분이
원남면 금매2리 목련봉(木蓮峰) 아래 병풍처럼 둘러쳐진 석벽 밑에는 몽천(蒙泉)이라는 신비한 샘이 있어 사시사철 차고 맑은 물을 뿜어낸다. 몽천에 기대어 화강암으로 쌓은 기단위에 자그마한 비각이 삼조어비각(三朝御批閣)이다. 비각의 화려하고 산뜻한 단청이 몽천의 잔잔한 연못에 비쳐 마치 동양화 한 폭을 보는 듯하다 .삼조어비각은 조선시대에 세 임금의 답신을
임광원 군수가 지난 9월8일 영덕지원에서 진행된 결심공판에서 벌금 70만원과 추징금 5백만원을 선고받아 군수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군수 후보자 시절부터 ‘청렴’의 이미지를 내세우며 당선된 임 군수로서는 적잖은 심적 갈등과 마음고생을 했을 것이다. ‘재판정에 처음 섰다’고 하는 임 군수의 목소리에서 참담함과 비
울진군의 주민참여예산제가 홍보부족으로 자칫 형식에 그칠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다. 지방재정법 개정안에 따라 울진군에서도 주민참여예산제 운영 조례안을 지난 8월17일 입법예고를 하고 9월1일부터 23일까지 주민의견 설문조사를 했다. 그러나 군이 이에 대한 의지가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주민의 무관심인지 처음 진행된 주민의견 설문조사가 과연 얼마나 실효성을 거뒀
2011년 6월23일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 521번지 일대에 국보 제242호인 울진봉평리신라비(蔚珍鳳坪里新羅碑) 전시관이 개관식을 가졌다. 4년여 동안의 공사기간과 180여억원의 공사비를 투입해 12,624평의 부지에 지하1층 지상2층, 건축연면적 723평 규모로 건축하였다. 전시실은 제1전시관 제2전시관 제3전시관 그리고 체험실과 야외 비석전시관을 갖추어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는 옛날 신라 왕이 교(敎)를 내린 마을이다.봉평리는 군내의 많은 마을 중에서 왕과 관련된 사실이 입증된 유일한 마을로 「울진군지」나 「울진군 지명 유래집」에는 봉평리의 유래를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 있다. 「봉평(鳳坪)마을은 1590년경 봉성(鳳城)에서 살던 영양인(英陽人) 김계근(金啓瑾)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동해 연변(沿邊) 건
예로부터 소나무를 만수지장(萬樹之長)이라 하여 모든 나무의 으뜸으로 꼽았고 오색지수(五色之首)라 하여 우리의 전통 5방색의 첫머리로 삼았다.사람은 소나무와 함께 태어나서 소나무와 함께 죽는다하여 소나무를 한민족의 나무라 하기도 한다. 아이가 태어날 때 소나무 가지를 꽂은 금줄을 쳤고 사람이 생을 마감하고 흙으로 돌아갈 때도 소나무 관(棺)의 신세를 진다.집
2011년 경제총조사를 실시한다. 국민경제 전반에 대한 고용 생산 투입(비용) 등에 관한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서이다.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국가간 경제전쟁 대열에서 낙오하지 않으려면 신속한 상황분석으로 선제적 전략수립은 필수적이다.종전 조사별로 시기가 상이하여 동일시점에 전체산업에 대한 비교분석이 사실상 어려웠던 통계조사를 전반적인 정비를 통하여 동일시점에
기성면 구산리 마을에서 평해읍 월송리쪽 끝자락에 한국전통 건축물로 깔끔하게 단장된 운암서원(雲巖書院)이 있다. 현재의 운암서원 건물은 서기 1964년에 세운 것으로 본래는 「조선 순조(純祖) 26년(1826년) 온정면 반암동에 창건하여 백암(白岩)김제(金濟) 와 물제(勿齊) 손순효(孫舜孝) 양현을 배향하다가 순조 33년 (1833년)에 온정면 노은동(魯隱洞
‘매향(埋香)’이란 향나무를 땅속에 묻어두는 것을 말하며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발견된 것을 ‘침향(沈香)’ 또는 ‘침향목(沈香木)’이라 한다.매향을 하는 목적은 불교의 미륵신앙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으로, 요약하면 ‘부처가 중생들을 구제하고 난 뒤 56억년 후에 미륵이 하생하여
일본 후쿠시마 원전이 3월11일 오후 3시경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일부 원전이 폭발하고 방사성물질이 유출되는 비상사태가 3주가 지났지만 수습이 안되는 모습이다. 이제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닌 전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으며 세계 유수의 원전전문가들의 힘이 보태지고 있다. 하지만 속 시원한 해결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일본은 대지진이 지나간 후에도 강도 6.5